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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플’일 줄은 몰랐던 남자의 ‘자폭쇼’

등록 2012-06-06 16:07수정 2012-06-07 10:57

방송 화면 갈무리
방송 화면 갈무리
한겨레21 913호
[문화]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갈 텐데” 그는 왜? 엠넷의 ‘허구 리얼리티’ <음악의 신>

연예인들은 살기 위해 고백하고, 뜨기 위해 자폭한다. 그런데 이런 자폭은 어떨까? 케이블 채널 엠넷 <음악의 신>은 그룹 룰라 이상민의 ‘허세 월드’에서 출발한다. “나는 건재하다. 나는 더 이상 추억 속에 갇혀 있는 박제 같은 존재가 아니다.” 그래봤자 소용없다. 동료 연예인들은 좀처럼 그의 전화를 받지 않는다. 만나봤자 “형, 돼지가 됐네” “이제 춤도 못 추잖아” “너 나한테 돈 달라고 온 건 아니지?” 하며 폭격하기 일쑤다. 표절, 도박, 이혼에 자살 기도까지, 주로 남의 입을 빌려 하는 이 ‘자폭쇼’가 기이하다. 어두운 과거를 용서받기는커녕 놀림만 받고, 재기는커녕 ‘퇴물’ 연예인으로서의 면모만 드러난다. 고백조차 얹지 않은 이 리얼리티는 그에게 약일까, 독일까. 방송에서 이상민조차 “난 가만히 있었으면 중간은 갈 텐데” 하며 한탄하지 않았나.

어디까지 진심이고 어디까지 허튼소린지

<음악의 신>은 가수 이상민이 오디션 프로그램과 경쟁만 난무하는 음악계에서 ‘LSM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고 진정한 음악가를 찾는다는 이야기다. 프로그램 내용은 물론 기획 의도조차 어디까지가 진심이고 어디까지가 허튼소린지 구별하기 어렵다. “음악은 잘하는 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다”라며 ‘오디션과의 전쟁을 선포’해놓고 틈만 나면 “오디션이 밉지 오디션에 출연한 가수가 밉겠느냐”며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뜬 가수들을 영입하러 다닌다. 이상민 자신도 카메라에 얼굴 한 번 비칠 기회를 얻으려고 <슈퍼스타K 4> 예선에 출전했다.

투자자들에게 잘 보이려고 ‘회사송’을 지어 바치고 길거리 캐스팅을 해보려다 경찰 단속에 밀려나는 이야기는 허구일 것이다. ‘왕년 스타’를 믿고 어깨 힘 풀지 않는 연예인들의 현실에 대한 패러디다. 허구 사이사이에 끼어드는 강도 높은 이야기들이 프로그램을 바싹 조인다. 동고동락하던 고영욱이 “상민이 형은 식당에서 우동이나 떠주며 살았으면 좋겠다”고 카메라에 속삭일 때 이상민이라고 가만히 있지는 않는다. “영욱이는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여자들과 여관 간다는 걸 내가 그렇게 막지 않았으면 활동 못했어. 지금쯤 여기저기서 애들이 ‘아빠!’ 그러고 나왔을걸.”

<음악의 신>은 문화방송 <라디오 스타>에 빚지고 있는 프로그램일지도 모른다. <라디오 스타>는 연예인의 이미지에 중대한 타격을 입힐 수도 있는 약점을 쉽게 들추고 웃음거리로 만드는 방식으로 스캔들의 무게를 날려버린다. <음악의 신>은 방송가에서 떠도는 ‘센 소문’조차 아무렇지 않게 입에 올린다. “재범이 형(임재범)은 나이트클럽에서 싸웠잖아.” “채리나는 잘 때도 눈 뜨고 잔대. 눈이 안 감겨서.” 샵의 이지혜에게는 “너 그때부터 담배 피운 거야? 지영이랑 둘이 담배 피우다가 걸리지 않았어?”라며 당황하게 만든다. 게다가 “지혜, 유리, 리나 너네 셋이 그룹을 결성해보라”며 “그룹 이름은 ‘성형외과’가 어떻겠느냐”고 낄낄거릴 때 시청자도 게스트도 정색하긴 어렵다. 프로그램을 만든 박준수 PD는 이렇게 말했다.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 이상민씨가 ‘나를 꾸미지 않겠다. 다 내려놓고 가겠다’고 했다. 우리도 그런 태도가 쿨하다고 생각했다. SBS <강심장>이나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긴 쉽다. 그건 쿨한 게 아니라 당연한 거다. 대본은 있지만 이상민씨가 전부 알지는 못한다. 우리도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알지 못한다. 대부분은 현장에서 나온다.”

고영욱 스캔들 뒤 프로그램 앞날도 안갯속

그런데 허구와 실제를 넘나들며 까불던 이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진짜 리얼리티와 마주쳤다. 4회 방송을 앞두고 ‘LSM 엔터테인먼트’ 캐스팅 이사를 맡았던 고영욱이 미성년자 성폭행 혐의로 수사를 받게 된 것이다. “미생물만 빼고 모든 걸 다 꼬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고영욱의 ‘여자밝힘증’은 그전까지는 농담거리였지만 돌연 유죄 증거가 돼버렸다. “프로그램을 하며 새삼 느꼈는데 내 주변 사람 중에 정상인이 하나도 없어.” 그렇게 말하는 이상민도 마찬가지다. “이상민씨가 <천상유애> 표절 논란 때문에 자살을 시도했을 때 바로 전화한 곳이 경찰서도, 병원도 아니라 <한밤의 TV연예> 제작팀이었다면서요?” <음악의 신>에서 누군가 묻자 이상민조차 당황해서 자리를 떴다. 연예인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연예인의 삶과 명예, 모든 것을 대중에게 생중계하게 된 셈이다. “상민이 형은 놀랐대요. 잘못한 일이 많아서 문만 나서면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손가락질할 줄 알았는데 자신을 아예 알아보지 못할 줄은 몰랐대요. 자신이 생각하는 자기 모습과 사람들이 보는 자기 모습이 이렇게 다를 줄 몰랐대요.” 박준수 PD의 말이다.

매회 다른 게스트를 끌어들여 고영욱만 한 동반자를 찾고 있는 프로그램의 앞날도 안갯속이다. “처음 기획할 때는 12회 방송을 통해 그럴듯한 음악을 하나 만들어내려고 했어요. 이젠 그런 욕심 버렸어요. 한 치 앞도 못 보는 세상에서 꼭 무언가를 보여주겠다는 생각이 허무한 것 같아요.” 박준수 PD는 덧붙였다. 매주 수요일 밤 11시에 방송되는 <음악의 신>은 최종회까지 6회를 남겨두고 있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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