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를 둘러싼 여권내 갈등이 점입가경이군요. 어제 한나라당 최고위원들이 일제히 ‘정동기 사퇴’를 주장했는데도 오늘 청와대는 일단 버티기로 나왔네요. 감사원 관계자가 “오늘 입장 표명할 계획이 없다”고 했다니 당분간 이대로 가겠다는 취지로 보입니다. 한마디로 엠비의 ‘몽니’라고 할 수밖에 없군요. 엠비가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 결과를 전해듣고 격노했다더니 아직도 화가 덜 풀린 모양입니다. 옆의 참모들도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분위기인 것 같고요.
오동잎이 떨어지면 가을이 온 줄 알라고 했는데, 집권 4년차 대통령의 당연한 레임덕을 엠비 혼자 못받아들이겠다고 버티는 형국입니다. 한 후배 기자는 어려운 4자성어까지 동원해 ‘당랑거철’이라고 하더군요. 수레를 막고선 사마귀 꼴이라고나 할까.
‘정동기 파동’은 애초에 원인을 제공한 게 이 대통령이라고 해야겠지요. 자기 측근으로 있던 사람을 두 직급이나 올려 감사원장으로 내정하려 한 것 자체가 문제죠. 유신시대 이후에는 그런 전례가 없었다는데, 청와대 참모들이 그런 사실을 알고도 모른 척 했는지, 아니면 몰랐던 것인지 알 수가 없군요. 더구나 청와대 민정수석 시절 총리실 민간인 사찰 사건의 보고를 받았을 가능성이 농후한데다, 검찰의 2인자격인 대검 차장검사 시절 그 유명한 BBK사건 수사 당시 “엠비는 도곡동 땅과 무관하다”는 사실을 확인해준 장본인이어서 야당의 집중 표적이 되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사실이었는데도 그냥 임명을 강행한 것은 ‘강심장’이라고밖에 해석할 길이 없네요.
200개 항목에 거쳐 사전검증을 하네, 청문회를 거쳤네 하며 자신감을 보였지만 어찌 그렇게 민심과 동떨어진 판단을 했는지 청와대 참모들의 처신도 이해하기가 어렵군요.
정동기 후보자가 얼마나 더 버틸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한나라당이 어떻게 나올지도 궁금합니다. 일단 해외여행에서 돌아온 김무성 원내대표는 “나는 정동기 사퇴에 동의한 적 없다”고 한발 빼고 있다네요. 정 후보자와 한양대 동문으로 이번 인사에도 개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탓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청와대가 버티고 한나라당이 다시 이 때문에 자중지란을 벌이게 될지, 아니면 하루 이틀 숨고르기 뒤에 정 후보자를 사퇴시키고 다시 후임자를 찾을지 지켜볼 일이군요. 아마도 정상적인 정당이라면 여기서 다시 자중지란을 하는 최악의 선택은 피하겠지요.
일이 안되려면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요즘 한나라당이 그렇네요. 하필 이 판국에 한나라당 의원들이 중심이 된 국회 사법개혁특위 위원들이 남미로 14일 일정의 여행을 떠났다네요. 이미 한차례 사법개혁과 관계없는 외유성 일정이라는 언론 지적이 있었는데도 강행했다는군요. 페루 볼리비아 브라질에 가서 무슨 선진사법제도를 배워오려는 건지, 관광지 일정은 왜 끼워넣었는지, 숱한 문제제기에도 들은 척도 않고 과감하게 여행을 떠나셨다는군요. 현지에 계신 교포들께서는 이분들이 어떻게들 지내시는지 동영상이라도 찍어 올리시면 어떨지요?
김이택 편집국 수석부국장 ri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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