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스타인버그 미국 국무부 부장관이 어제 우리나라를 찾아 정부 고위당국자들을 두루 만난 뒤 오늘 일본으로 떠났습니다. ‘남북관계 개선’과 ‘6자회담 프로세스의 조속한 재개’를 밝힌 지난주 미-중 정상회담의 흐름을 구체화하기 위해서죠. 6자회담이 재개까지 가려면 이런 움직임이 적어도 몇 차례 더 필요할 겁니다.
이와 맞물려 우리 정부 태도에서도 조금씩 변화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정부 고위당국자가 “6자회담 재개 과정으로 가는 트랙에서는 천안함과 연평도 문제가 직접적인 조건은 아니다”라고 한 게 바로 그렇습니다. 물론 정부는 이전에도 천안함·연평도 문제 해결이 6자회담 재개 조건이라고 꼭 집어서 얘기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남북대화가 6자회담 재개보다 앞서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고, 남북대화에는 연평도·천안함 문제 해결이 포함되는 것으로 이해된 측면이 있습니다. 이 부분이 이제 바뀌고 있는 거죠.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걸까요? 그 판단을 하려면 현재 상황을 정리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6자회담으로 향하는 동력은 중국과 미국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중국이 이전부터 6자회담 조기 재개를 주장해온 것을 생각하면 더 중요한 나라는 미국입니다. 미국에는 지금 두 가지가 상수입니다. 하나는 오바마 정부 임기 중에 대북 대화와 협상을 할 수 있는 시기가 많지 않다는 겁니다. 오바마 정부는 4년 임기의 절반 동안 대북 압박을 했으나 핵 문제는 더 나빠졌습니다. 올해 6자회담을 재개해 진전을 보지 못하면 임기 중에 북한 핵 문제 해법의 가닥을 잡을 가능성은 낮습니다. 둘째는 중국과의 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겁니다. 중국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가장 중시합니다. 미-중 정상회담에서 나온 공동성명에도 이 부분이 강조돼 있습니다. 그런데 동북아에서 미-중 관계가 안정되려면 남북한 사이의 갈등이 줄고 6자회담이 열려야 합니다.
미국과 중국 입장에서 볼 때 남북대화는 6자회담 재개로 가는 징검다리입니다. 남북 사이 모든 현안이 풀리지 않더라도 새로운 갈등이 불거지지 않으면(6자회담을 방해할 정도의 일이 생기지 않으면) 6자회담 재개로 가는 거죠. 미국 고위당국자들이 북한의 새로운 도발 억제와 핵·미사일 실험 유예를 강조하는 게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미국은 남북관계에서 결정적 진전이 없더라도 6자회담 재개 과정을 진전시킬 겁니다. 천안함과 연평도 문제는 애초부터 6자회담 재개의 직접적 조건이 아닌 거죠.
남북관계가 어떻게 될지는 우리 정부가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지향점을 갖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세 가지 선택이 가능합니다. 우선 미국·중국처럼 남북대화를 6자회담 재개로 가는 징검다리로 생각한다면 이제까지의 강경 대북정책을 완화하고 남북관계와 6자회담을 분리해야 합니다. 나름대로 현실적인 길입니다. 두 번째는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하는 겁니다. 이 경우 우리 정부가 6자회담 재개 흐름의 방해자로 비치더라도 감수해야겠죠. ‘찰떡’ 같다는 한-미 공조도 흐트러질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대북정책을 전면적으로 전환하는 길이 있습니다. 남북 정상회담까지 염두에 두면서 다양한 고위급 회담을 통해 남북관계를 이전 정권 수준으로 복원해내는 거죠.
지금 정부 안 분위기로 볼 때 첫째와 둘째 사이에서 갈팡질팡할 가능성이 큽니다. 상황 변화는 알지만 생각과 몸이 잘 따라주지 않는 거죠. 여기에는 정치적 이해득실에 대한 판단도 크게 작용합니다. 북한 문제와 관련해 정부 정책이 어느새 극우 쪽으로 기울어져 버린 탓에 바꾸려면 일정한 정치적 위험을 감수해야 하니까요.
지금은 결단이 필요한 때입니다. 정치적 계산을 떠나 한반도와 한민족의 장래를 내다보며 큰 그림을 그려나가야 합니다. 북한은 우리가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면 반드시 호응하게 돼 있습니다. 남북관계가 풀리면 당연히 핵문제와 평화체제 등 한반도 관련 사안에 대한 우리의 주도력도 커질 수 있고요.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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