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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세종호텔 정리해고, 이게 정의인가

등록 2021-12-27 16:05수정 2021-12-28 02:01

경영난을 이유로 정리해고를 추진하면서 노조와 갈등을 빚고 있는 세종호텔이 직장폐쇄를 하겠다고 밝힌 12월9일, 한 노동자가 서울 명동에 있는 세종호텔 로비에서 ‘파업 트리’를 들어 보이고 있다. 세종호텔은 정리해고 대상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조리·식기세척 노동자한테까지 외국어 시험을 요구해 논란을 빚었다. 김혜윤 기자
경영난을 이유로 정리해고를 추진하면서 노조와 갈등을 빚고 있는 세종호텔이 직장폐쇄를 하겠다고 밝힌 12월9일, 한 노동자가 서울 명동에 있는 세종호텔 로비에서 ‘파업 트리’를 들어 보이고 있다. 세종호텔은 정리해고 대상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조리·식기세척 노동자한테까지 외국어 시험을 요구해 논란을 빚었다. 김혜윤 기자

[왜냐면] 황철우 |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집행위원장

정리해고가 도입된 이후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선 노동자가 수없이 많다. 지금, 이 순간에도 코로나19를 이유로 손쉬운 정리해고가 벌어지고 있다. 서울 명동에 있는 세종호텔에서 지난 10일 정리해고가 이뤄졌다. 세종호텔은 세종대학교를 운영하는 학교법인 대양학원이 100%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수익사업체다. 대양학원은 국내 일반대학 중 재정건전성 5위로 안정적인 재정 운용을 하고 있다. 하지만 호텔은 코로나19로 인한 경영악화를 이유로 2020년부터 세차례 희망퇴직을 시행한 다음 급기야 식음료사업부 소속 12명에게 또다시 정리해고를 통보한 것이다.

10년 전 세종호텔 직원은 250여명으로 대부분 정규직이었다. 노조의 요구로 계약직 직원도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장기근속 비율도 높아 동종업계에서 선망받는 직장이었다. 하지만 주명건 전 대양학원 이사장이 세종호텔 회장으로 부임한 이후 잦은 전환배치와 희망퇴직 강요, 9년간 임금 동결과 상시적인 구조조정 등으로 지금은 객실 330개의 4성급 호텔에 정규직이 20명 남짓이다. 정규직의 빈자리는 외주·용역화되어 저임금 노동자로 채워졌다. 지난 10년 동안 진행된 노조 죽이기와 구조조정의 결과는 ‘비정규직 호텔’의 완성이었다.

노조는 일방적인 정리해고를 막기 위해 먼저 고용안정을 보장한 뒤 고통분담 방안을 논의해보자고 제안했다. 고용유지지원금 등 정부의 지원을 받아 휴직 상태로 고용을 유지한다면 노조원도 보험료 등 일부 비용을 부담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사스와 메르스 때도 노사가 함께 경영위기를 이겨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쪽은 이조차도 거부한 채 해고 선정 기준으로 조리사와 식기세척 노동자한테까지 ‘외국어 구사 능력 시험’을 요구했다. 사쪽이 특급호텔에 걸맞은 식사와 음료를 제공하는 등 서비스 질을 개선하기보다 식음료사업부 폐지를 들고나온 것은 오히려 경영위기를 조장하는 행태라고 볼 수밖에 없다. 정리해고의 필수 요건이 ‘경영위기’이기 때문이다. 경영정상화에 써도 모자랄 시간을 정리해고 강행을 통한 노사갈등으로 허비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노조가 파업과 로비 농성, 정리해고 철회 소송, 시민사회와의 연대로 맞서자 사쪽은 기다렸다는 듯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코로나19로 인한 해고를 멈추고 함께 살자”는 노동자의 외침은 생존을 위한 절규다. 코로나19 발생 초기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단 한개의 일자리라도 지키겠다”고 약속했지만, 또다시 말의 성찬만 되고 있다. 그 많은 이들이 촛불을 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나라 걱정으로 시작된 촛불은 점점 진화하면서 내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발전했다. 그 뒤 5년이 지났다. 내 삶이 나아졌다는 이를 주변에서 찾아볼 수가 없다. 열심히 일할수록 내 삶이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주거, 교육, 의료비 폭탄으로 뒷걸음질 치고 있다. 노동자의 삶을 옥죄는 ‘고용불안’의 문제는 전혀 개선되지 않고 오히려 더 악화되고 있다.

코로나19로 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구조조정과 정리해고 움직임도 확산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고용불안을 걱정해야만 한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외친 대통령 때 벌어졌던 끔찍한 정리해고가 촛불 정부를 표방한 정권에서도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 내 삶이 바뀌지 않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무능한 경영진은 그대로 있고 왜 성실하게 일한 노동자만 쫓겨나야 합니까?” 세종호텔 로비에서 한뎃잠을 자는 정리해고 노동자가 대선 후보들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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