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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진폐 장해등급 판정, 이래선 안 된다

등록 2022-01-12 18:14수정 2022-01-13 02:01

[왜냐면] 성희직 | 정선진폐상담소장·시인

2021년 한 해가 저물던 12월15일. 강원도청 광장에 세운 천막 앞엔 주름 깊은 얼굴에 광산 노동자 복장을 한 사람들의 구호가 울려 퍼졌다. “엉터리 진폐 판정은 살인이다!” 영하 15도를 오르내리는 한파에 일주일간 단식투쟁에 나선 진폐협회(광산진폐권익연대) 광부들의 모습이다. 가래 끓는 목소리 뒤쪽에서는 ‘이곳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절박한 민생현장입니다’란 펼침막이 펄럭였다.

대한민국 최대 직업병 피해 집단인 진폐 환자들은 숨 쉴 때도 고통을 받는다. 탄광 막장에서 석탄을 캘 때 발생한 미세먼지가 오랜 시간 쌓여 폐가 점차 화석처럼 굳어져가는 진폐증. 광부로 오래 일한 이들은 진폐 장해 등급 받기를 소망하고 있다. 13급, 11급, 9급 등 장해 등급을 받게 되면 매달 진폐연금과 무상진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근로복지공단이 ‘엉터리 판정’으로 장해 등급을 주지 않고 있기에 단식투쟁에 나선 것이다.

진폐병원에서 2박3일 정밀검진을 받은 소견서를 근로복지공단 진폐심사회의에 보내면 그곳에서 진폐 장해 유무를 판정한다. 문제는 근로복지공단 소속 진폐병원의 1형(진폐 13급)이란 소견에도 불구하고 진폐심사회의가 ‘무장해’로 판정한 사례가 71건이나 된다는 것이다. 2007년부터 진폐 상담을 해온 내가 지난해 협회 조직을 통해 전수조사한 결과이다. 정밀검진은 한번 받으면 1년이 지나야 다시 받을 수 있다. 마치 탁구공을 주고받듯, 정밀검진에서 진폐 13급 소견서를 받고도 어김없이 ‘무장해’ 판정을 받은 사람들. 그런 과정을 3회에서 많게는 8회나 반복한 사례자가 50명이 넘는다.

진폐 장해 등급 판정의 기본이 되는 병형검사는 국제노동기구(ILO)가 정한 기준표에 따라 장해 정도를 구분한다. 진폐병원 의사들이 그 기준에 따라 1형(진폐 13급) 소견서를 발급했음에도 번번이 무장해 판정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최근 강은미 정의당 의원실을 통해 받은 서면자료를 살펴보니 진폐심사회의는 2020년 총 50회의 심사를 했는데, 하루(고작 몇시간)에 170건이 넘게 심사한 날이 25회나 되었다. 진폐병원에서는 2박3일 정밀검진을 하고 대면 검사로 소견서를 작성하는데, 둘 중 어느 쪽이 더 정확하겠는가? 자기 조직인 진폐병원의 소견서마저 믿지 못해 부정하는 진폐 등급 판정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이와 같은 엉터리 판정이 진폐심사회의가 이중 잣대로 판정하기 때문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진폐협회의 끈질긴 투쟁 결과 조만간 피해자들에게 특별 검진을 실시하기로 했다. 우리의 요구는 분명하고도 간단하다. 근로복지공단 소속 병원의 의사 소견서대로 진폐 장해 등급 판정을 해달라는 것이다. 진폐증이란 불치병에 걸려 이제는 ‘세상의 막장’으로 내몰린 억울함에 온몸으로 신문고를 울리는 사람들. 이번 대선의 주요 화두가 공정과 상식과 정의가 아닌가? 사회적 약자인 진폐 피해자들의 억울함이 해결되는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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