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이성섭 | 숭실대 명예교수·전 한국제도경제학회 회장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는 수도권 아파트 공급을 늘리기 위해서 재건축-재개발-리모델링의 규제를 풀 것이라고 한다. 공급을 늘려 시장을 안정시키겠다는 것이다. 수요-공급으로 부동산 시장을 설명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은 시장을 안정시키고자 (과표 인상, 종부세 인상 등) 수요 억제에 초점을 맞추었다. 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정권의 대표적 정책 실패 사례로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러면 윤 당선자 쪽의 (공급 정책) 주장은 타당한 것인가?
이론상으로 보자면 두 견해는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공급 증가가 시장을 안정시킬 것이라면 수요 억제도 시장을 안정시키지 못할 바가 없어야 한다. 그런데 김현미 전 장관의 정책은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지 못했다. 바로 고개를 드는 의문은 수요 억제 정책이 실패했는데, 공급 정책은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5~6년간(문 정부 집권 기간) 아파트 공급은 꾸준히 증가 추세였다고 한다. 수요-공급 이론에 무언가 빈틈이 있어 보인다.
최근 경제학에서는 심리학 접근 방법에 초점을 맞춘 행동경제학 이론이 주목을 받고 있다. 구매자들의 조바심(bias, 심리적 편향성)이 잠재적 매수인의 구매심리를 자극한다. 매도인은 한편으로 물량을 거두어들이고 다른 한편 호가는 올리게 된다. 조바심 프레이밍에 매몰된 집단심리 속에서 벌어지는 정글의 쟁투가 지난 2~3년간 부동산(특히 아파트) 시장의 실상이었다. 이 과열 시장에 판을 깔아준 것이 코로나 경기부양을 겨냥한 재정 및 통화공급의 확대 정책이었다. 구매자들의 조바심이 사회적 집단심리로 확산하게 되면, 세금으로 막는 수요 억제 정책은 백약이 무효다.
수요 억제에 초점을 맞춘 접근이 틀렸으니 공급 확대로 대처하면 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주장은 수요-공급 이론으로 봐도 틀렸고, 행동경제학의 입장에서 봐도 답이 아니다. 아파트 재건축-재개발-리모델링의 규제를 풀게 되면 해당 아파트 가격은 자산가치가 상승한 만큼 올라가게 된다. 문제는 이 아파트 가격 상승이 구매자의 조바심을 자극하고 그 심리적 프레이밍이 매수인들의 집단심리로 연결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규제를 풀면 아파트 공급이 증가할 테니 시장의 과열은 없을 것이라고 한다면 시장을 수요-공급으로 설명하는 것이니 심리적 현상의 우월한 설명력에 방점을 두는 행동경제학의 유효성을 부인하는 것이다. 2019~2020년의 경험으로 봐도 맞지 않는다.
수요-공급 이론과 행동경제학 이론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가? 전자는 시장이 ‘주어져 있다’고 보는 견해다. 재건축-재개발-리모델링의 규제완화가 아파트 가격을 상승시키겠지만, 시장에 들어와 있는 수요의 틀은 정해져 있으니, 공급이 증가하는 한 시장 과열은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논리다. 반면 후자는 시장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수시로 ‘만들어지고 또한 해체된다’고 본다.
재건축 규제완화로 인한 아파트 가격 상승이 구매자들의 조바심을 자극하고 그것이 다시 잠재적 매수인의 구매심리를 유발한다면 그것은 아파트 시장에 새로운 수요가 유입됨을 의미한다. 여기에 조바심이 집단심리로 발전한다면 아무리 공급을 늘리더라도 새로 급격히 유입되는 수요가 공급을 제압하게 된다.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공급 확대 정책도 백약이 무효가 된다. 2019~2020년의 수요 억제 정책과 마찬가지로. 수요-공급 이론만 아는 경제학이라면 차라리 모르는 편이 낫다. 모르면 경험에서 배우려 하고 또 조심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