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이 지난 28일 오전 서울 지하철 3호선에서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운동을 벌이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왜냐면] 박채훈 | 40대 회사원·경기도 안산시
“우리 지하철에 장애 신호가 있어 잠시 정차합니다. 승객 여러분의 많은 양해 바랍니다.”
지하철이 멈춰 섰다. 직원의 안내방송에도 승객들은 별다른 반응 없이 각자의 휴대폰에 집중하고 있다. 안내방송은 뭐 이렇게 잦나 싶을 정도로 같은 얘기를 반복했다. ‘장애 신호가 있으면 빨리 고쳐서 출발해야지 계속 방송만 하네’, 생각하며 혹시 있을 고장 같은 돌발 상황에 대비하여 다음 계획을 꾸렸다.
집으로 돌아가는 3호선 지하철 안. 다른 승객을 위해 기관사가 그 ‘장애 신호'를 빨리 바로잡기를 바랐다. 십분쯤 지났을까, 옆의 승객이 통화를 한다. “지하철 멈췄어. 또야. 장애인들이 시위한대. 아휴, 짜증 나. 청와대 앞에 가서 하지, 왜 전철에서 그래?” 통화 내용을 수정해주고 싶었다. ‘장애인 시위가 아니고요, 장애 신호래요.'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장애 신호가 을지로3가역에서 있다는 거다. 포털 사이트 검색을 시작했다. ‘장애' 두 글자를 넣자마자 장애인 이동권 시위 관련 기사가 떴다. 옆 승객의 말이 맞았다. 어쩌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내가 안내방송을 엉뚱하게 이해했다. 뉴스를 쭉 살펴봤다. 매번 지켜지지 않는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해 작년 12월 ‘세계 장애인의 날'을 계기로 지하철 승차 시위를 했고, 대선 전까지 계속하다가 일부 후보의 약속을 믿고 한 달 동안 시위를 멈췄다.
그러나 대선 후 당선자는 확실한 약속을 내놓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시작한 시위의 현장에 내가 있었다. 안내방송은 수시로 반복됐다. 승객들은 여전히 별다른 반응이 없었지만 나는 불안했다. 누군가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화를 낼 것 같았다. 그렇게 20분가량 지났을 때, 안내방송의 내용이 달라졌다. 다소 지친 목소리로 정차가 길어지고 있다, 급한 일이 있으신 승객은 다른 수단을 이용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 라고. 그 안내방송과 함께 몇몇 승객이 이동을 위해 내렸고, 시위로 인해 지하철이 멈춰서 조금 늦겠다는 통화들이 이어졌다. 옆 승객의 짜증 섞인 혼잣말이 있었지만, 아무도 맞장구를 치지 않았고 화를 내는 통화도 없었다. “우리 열차는 현재 장애인 승차 시위로 24분간 정차하고 있습니다….” 그 안내가 끝나자마자 바로 이어진 목소리는 열차가 다시 출발한다고 알렸다. 출입문이 위잉 하며 닫혔다. 갑자기 눈물이 났다. 24분. 목소리를 들어달라고 외쳤던, 외로웠을 그들의 24분.
새 학기가 되면 담임 교사가 교실 자리 배치를 한다. 이름순으로 번호를 매겼으니 자리도 그 순서로 앉으라 한다. 강 학생이 제일 앞자리, 홍 학생이 맨 뒷자리다. 그런데 홍 학생은 키가 작은데다 시력도 좋지 않아 칠판이 안 보인다. 게다가 앞자리 덩치 큰 최 학생은 시야를 떡 가로막는다. 선생님께 말했더니 바꿔주기 시작하면 다른 애들도 이런저런 이유로 다 바꿔줘야 한단다. 그러니 다음 학기까지 기다리란다. 지금 안 보인다고 하는데도 답이 없다. 그래도 계속 얘기했다. 선생님은 수업 시간에 다른 학생들의 학습을 방해한다고 화만 낸다. 그때 반 친구들이 하나둘씩 같은 목소리를 보탠다. 눈 안 좋고 키 작은 애들이 앞에 앉고, 시력 좋고 키 큰 애들은 뒤에 앉아 편히 수업하자고. 수업을 방해하려는 게 아니라 불편함을 들어달라는 거다, 그게 뭐가 어렵냐, 우리가 언제 방해받았다고 했나, 당신이 자꾸 홍 학생과 우리를 갈라치기 하니까 참다못해 얘기한다. 제대로 들어보고 해결하라!
이동권은 생존을 위한 기본권이다. 장애인은 그동안 줄곧 이동의 자유를 보장받지 못했다. 그날 지하철의 승객들과 나는 딱 24분 동안 멈춰 선 채 장애인들과 함께했다. 나의 무지함에 부끄러워졌다. 하지만 이렇게 쓴다. 좀 들어달라고. 그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