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이준규 | 한국외교협회장, 전 주일본·인도 대사
9년 전 박근혜 정부 출범 시 산업부로 옮긴 통상 기능을 외교부로 원상복귀 시킬 것인가에 대해 뜨거운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의 전제는 통상 기능을 어디에 두는 것이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냐는 것과 경제안보 개념의 등장 등 확연히 달라진 국제 통상환경에 잘 대응할 수 있는 통상 조직의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국익 극대화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고려 요소가 있을까? 먼저 국제환경의 급격한 변화다. 미국-중국, 미국-러시아 갈등을 기본 축으로 강대국들은 저마다 오커스(AUKUS),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 포괄적·점진적 티피피(CPTPP), 민주주의 동맹 등 다양한 형태의 합종연횡을 추진 중이다.
2015년, 미국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항공모함으로 지칭하면서 중국 견제를 위한 통상 플랫폼으로 출범시킬 때, 산업통상자원부는 “기업에 이익이 되지 않는다”며 참여하지 않았는데, 티피피가 가지는 지정학적·안보적 가치를 단기적 기업 이익의 하위에 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와 시피티피피 가입 협상을 눈앞에 두고 있다. 국제관계를 국내 산업적인 근시안으로 보게 되면 궁극적으로는 기업의 이익에도 배치되는 결과가 나온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둘째는 전문성의 문제이다. 지금 우리가 논의하고 있는 통상 기능은 복잡한 국제 통상환경을 명확히 이해하고, 각 나라의 특성을 잘 파악하여 양자·다자간 교섭에서 우리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필요한 전문성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10년간 산업부 체제의 통상 담당자들은 이러한 전문성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먼저,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을 보면 지난 10년간의 자유화율이 60%대에 불과한 역대 최저 수준으로서 에프티에이라 부르기도 민망하다. 산업부는 중국과 에프티에이 서비스투자 협정, 게임 판호 등록, 한한령 해제, 요소수 문제 등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논의하지 못하고 있다. 철강 협상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일어났다. 유럽연합(EU), 영국,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등 미국의 동맹국은 모두 수출 물량 제한이 없고 무관세로 일단 수출하다가 물량이 넘으면 관세를 지불하고 수출하면 된다. 그런데 우리는 수출 물량이 정해져 있어 쿼터 이상의 물량은 팔고 싶어도 못 판다. 이런 자율적수출규제(VER)는 1980년대 전세계적으로 사라졌는데 그걸 한국이 받은 것이다.
마지막으로 산업부가 주장하는 산업, 공급망, 기술과 통상 간 결합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상은 다르다. 먼저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작년 조사한 바에 따르면 공급망 리스크 1위 요인은 지정학적 문제이고 2위는 코로나19, 3위 국외 소비자 수요, 4위 국내 규제, 5위 사이버 리스크 등으로 모두 산업부와 무관하다. 통상 협상에서 항상 민감하고 어려웠던 분야는 농업, 수산업, 서비스업, 보건 등인데 이 또한 산업부 소관이 아니다. 오히려 국내의 특정 산업과 연계가 없는 외교부가 사심 없이 국내적으로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대외적으로는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
9년 전 외교통상부의 통상교섭본부는 부내에서도 인기 있는 부서였고, 국제적으로도 상당한 위상을 확보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제라도 산업부 내에서 우대를 받지 못하고 있는 통상 기능을 외교부로 복귀시켜 국익을 극대화할 필요가 있다.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는 이미 산업통상형을 버리는 결단을 내렸다고 하는데, 우리 대통령직인수위원회도 속히 결단을 내려서 이 문제에 마침표를 찍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