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박종남 | 제주 서귀포경찰서 형사과장
지난 4월18일치 <한겨레>에 ‘어느 중학생의 죽음’이라는 제목의 기고문이 게재됐다. ‘중학생의 죽음’ 사건이란 지난해 7월18일, 엄마와 피해자인 중학생 아들이 살고 있던 제주시의 한적한 마을 어느 집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피해자의 어머니와 한때 동거했던 범인이 공범과 함께 피해자를 폭행하고 청테이프로 결박한 뒤 허리띠를 이용해 목을 졸라 살해했다는 혐의로 기소돼 재판이 진행 중이기도 하다.
기고문의 전체적인 맥락은 현재 국회에서 개정 절차가 진행 중인 형사소송법안의 검찰 수사권에 관한 것이지만, 경찰의 많은 노력과 결과는 생략한 채 마치 미궁에 빠질 뻔했던 것처럼 이 사건을 묘사한 점은 아쉽다.
당시 사건을 지휘한 형사과장이자, 형사의 한 사람으로서 서운함을 감출 수 없어서 이 글을 쓴다.
기고문 내용대로 경찰 수사 단계에서 경찰이 범행 도구인 허리띠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을 의뢰했지만, 범인들의 디엔에이(DNA)가 검출되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점만으로 증거법상 살인죄의 책임을 묻기 곤란할 정도였다는 부분은 수긍하기 어렵다.
당시 경찰은 모든 형사인력을 비상소집하고 수사력을 집중해 신고가 접수되고 채 하루도 되기 전에 폐회로텔레비전(CCTV) 및 통신 추적 등 다양한 수사 기법을 통해 행적을 감추고 도주한 범인들을 모두 검거했고 10일이라는 제한된 구속 기간 동안 많은 증거를 확보했다. 비록 허리띠에서 디엔에이가 검출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증거법상 범인들에 대해서는 유죄를 입증할 증거들이 충분히 확보돼 있었다.
우선 범인들이 사용한 다른 범행 도구에서 범인들의 디엔에이와 지문을 찾아냈고, 범인들이 피해자의 집으로 들어가고 나오는 장면이 촬영된 폐회로텔레비전 영상 자료도 확보했으며, 공동범행을 증명하는 범인들 사이에 오간 문자메시지 내용을 찾아냈다. 여기에 범인들의 행적 수사 및 범인들 사이 거래 내역, 카드 사용 내역 및 거래 장부 분석을 통해 범행의 모의·준비 과정을 확인할 수 있었고 범인이 공범에게 범행 대가를 지급한 사실도 밝혀냈다. 이 외에도 현장 감식, 부검, 휴대전화 포렌식 및 프로파일러 분석 등을 통해 다양한 증거를 확보했다.
이러한 증거들을 토대로 여러차례 신문한 끝에 범인들이 자백할 수밖에 없도록 했으며(공범은 경찰 수사 단계에서 범행의 개입 정도를 일부 부인하였고, 1심에 이어 2심까지도 같은 취지로 주장하고 있다), 결국 사건의 전모를 밝혀내어 범인 2명을 살인의 공동정범으로 구속영장을 발부받아 수사해 검찰로 송치했다.
검찰이 범행 도구인 허리띠에서 범인들의 디엔에이를 추가로 검출해 증거를 더 보강해준 부분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억울한 죽음의 실체적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일선 형사들과 몇날 며칠 동안 밤을 지새우며 다양한 증거를 확보하고 자백을 끌어낸 사건을 ‘이태원 햄버거집 살인사건’의 판박이 사건으로 치부해버린다면, ‘나쁜 놈은 반드시 잡는다’는 신념 하나로 30여년 동안 형사로 근무해온 나로서는 마음이 착잡할 수밖에 없다.
범죄로부터 고귀한 생명을 지켜주지 못한 경찰관으로서 피해자의 유족들에게는 너무나도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뿐이다.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