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운 전국민중행동 공동대표(왼쪽), 김종우 민변 통상위원회 변호사(오른쪽) 등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이 지난 1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론스타 판결에 즈음한 국회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왜냐면] 김성진 | 변호사
론스타로부터 5조원을 받아낼 기회가 있었다.
론스타의 ‘먹튀’ 이후 외환은행 주주들은 민변, 참여연대의 도움을 받아 2012년 7월24일 론스타를 상대로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했다. “론스타는 산업자본이기 때문에 외환은행 인수 자격이 없었다. 따라서 주식인수 계약이 무효이다. 무효인 계약을 근거로 가져간 배당금과 매각차익 총 3조4480억원 및 이자를 반환하라.”
국내법은 은행을 인수하기 위해서는 산업자본이 아닌 금융자본이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산업자본은 은행돈을 빼서 쓸 유혹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론스타는 2003년 9월2일 외환은행을 인수하기 위해 산업자본 계열사를 감추고 자신을 금융자본이라고 속인 문서를 대리인 김앤장 변호사들을 통해 제출했다. 정부는 무능해서 속았는지 알면서도 봐줬는지 모르지만, 론스타 쪽 말만 믿고 외환은행 인수를 승인했다. 인수 당시 김앤장 고문이 한덕수 총리였고, 재정경제부 은행제도과장이 추경호 경제부총리였다.
공익소송으로 무료로 주주대표소송을 대리했던 필자는 인수 당시 론스타가 산업자본이었다는 명백한 증거를 확보했기 때문에 승소가 유력하다고 봤다. 그러나 소 제기 이후 상황이 갑자기 바뀌었다.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하나금융지주에 팔고 나갔는데, 인수자인 하나금융지주가 2013년 1월 주식 포괄적 교환을 통해 기존 외환은행 주주들의 주식을 강제로 모회사 하나금융지주 주식으로 바꿨다. 론스타는 기다렸다는 듯이 “소를 제기한 원고들이 이제는 더 이상 외환은행의 주주가 아니라 모회사 하나금융지주의 주주에 불과하니, 주주대표소송 자체가 부적법해졌다”고 주장했다. 결국 하급심은 론스타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이 위기를 뒤집을 방법이 준비되고 있었다. 그것은 이중대표소송이다. 즉, 모회사의 주주가 자회사의 이사를 상대로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상법을 개정하는 방안이 여야 합의로 당시 입법이 진행 중이었다. 소수주주는 개정법 통과 전에 판결이 선고돼선 안 된다며 2018년 11월23일 대법원에 판결 선고 연기를 신청했다. “이 소송은 3조5천억이 넘는 국민경제에서 중요한 소송입니다.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통해 국민이 쌓은 부를 불법적으로 빼돌렸습니다. 그런 론스타가 오히려 정부의 잘못으로 외환은행 매각이 지연돼 손해를 봤다며 대한민국을 상대로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절차(ISDS)를 신청해 천문학적인 배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론스타가 제기한 중재 사건은 대한민국이 패소할 가능성이 상당합니다. 그렇게 되면 론스타는 이중으로 이익을 챙기게 됩니다. 2018년 11월5일 여야 합의로 상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으니 상법개정안이 통과된 이후 개선된 입법 내용을 가지고 이 사건의 적법성이 판단돼야 합니다. 일시 정의가 지연되더라도 명백한 부정의가 유지되어선 아니될 것입니다.”
그러나 소수주주가 선고 연기를 신청한 지 1주일 만인 2018년 11월29일 대법원은 론스타의 손을 들어주고 말았다. 보수야당의 입법 지연과 대법원의 석연찮은 판결 선고로 인해 론스타로부터 이자까지 적어도 5조원은 받아 낼 수 있는 기회가 수포로 돌아갔다. 이중대표소송제는 2020년 12월9일에야 보수야당의 반대를 뚫고 ‘공정거래 3법’ 중 일부로 통과되었다. 만시지탄이다. 대법원은 무엇이 급해 소수주주의 선고기일 연기 신청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판결을 선고했는지 지금도 의문이다. 참고로 론스타 쪽 대리인은 외환은행 인수 때는 물론, 1심부터 대법원까지 김앤장 변호사들이었다.
필자가 예전에 걱정했던 대로 이제 론스타는 우리 정부를 상대로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절차(ISDS)를 통해 3천억원가량을 배상받게 됐다.
정부는 그동안 중재 과정에서 ‘론스타가 애초부터 산업자본이라 은행인수 자격이 없다’는 주장을 전혀 하지 않았다. 중재에서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카드를 쓰지 않은 것이다. ‘론스타가 산업자본이 아니라 인수를 승인했다’는 기존 주장을 뒤집고 중재에서 이기기 위해 ‘론스타가 산업자본임을 몰랐다’고 인정할 경우, 담당자의 무능이나 봐주기가 탄로 날까 두렵기 때문이다. 무능이면 과실이고, 봐주기면 고의다. 금융과 산업의 분리가 곧 국익이다. 지금이라도 국회가 나서 론스타 국정조사나 청문회를 통해 론스타와 관련된 일체의 로비와 관련자들의 잘못을 밝혀야 한다. 소를 잃었더라도 외양간은 고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