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7일 서울의 한 중고서점에서 부모와 자녀가 함께 책을 고른 뒤 내용을 살펴보고 있다. 문해력은 수능 등 대입 시험뿐 아니라 아이들이 졸업 뒤 ‘평생 독자’로 살아가는 데 큰 영향을 끼친다. 김지윤 기자
[왜냐면] 류웅재 |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최근 한 콘텐츠 전문 카페에 오른 “심심한 사과 말씀 드린다”라는 공지문이 논란이 됐다. 20세기 후반 중등교육을 받은 기성세대에게 이 표현은 공적인 문맥에서 세심한 예의를 갖춘, 정중하고 완곡한 관용적 표현이다. 반면, 인터넷과 에스엔에스(SNS) 등 다양한 미디어의 일상적 활용이 보편화한 1020세대는 ‘심심(甚深)한’의 의미를 ‘깊고 간절한 마음의 표현’ 대신 ‘지루하고 재미없다’로 오인했다는, 문해력이 낮은 세대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하지만, 언어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사회에서 이런 현상은 특정 세대의 문해력 문제가 아닌 언어교체 현상으로 바라보고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문자보다 영상을 통해 주로 정보를 획득하고 놀이도 하는 미디어 활용이 보편화한 오늘날, 영상문화가 문자문화를 납작하게 대체하는 것은 전 세대에 걸친 지구적 현상이다. 또, 한국의 문해력 저하는 청년세대보다 중년세대의 문제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글로 소통할 수 있는 언어능력이 16~24살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2개국 중 4위이지만 45~54살 구간에선 평균 이하로, 55~65살에선 하위권으로 떨어진다는 경제협력개발기구 국제성인역량조사(PIAAC) 연구결과가 대표적이다.
이런 환경에서 사실과 의견을 구별하는 능력이 저하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럽다. 이는 자신과 유사한 성향의 사람들과 소통한 결과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말은 불신하고 자신의 그것만을 증폭해 유일한 진실인 것처럼 느끼는 ‘에코 체임버’ 현상, 이로 인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편향을 강화한다. 영상과 에스엔에스를 통한 소통은 불편함과 감정노동을 수반하는 대면 만남, 혹은 광장에서의 상호작용을 보완한다고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다. 즉 제한된 공간 안에서 자신과 비슷한 이들과 ‘끼리끼리’ 소통을 강화하는 게 주된 소통 방식이고, 이는 다양한 가짜뉴스와 공동체의 분화가 확산하는 물적, 사회심리적 토양을 제공한다.
이런 시대변화의 한가운데에서 소통양식과 언어의 변화를 특정 세대의 문제로 환원하고, 이를 다시 ‘문해력 프레임’으로 치환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에 대한 올바른 진단과 해법에서 멀다. 문해력은 단순히 글을 읽고 쓰는 것을 넘어 언어가 전달되는 맥락과 화자의 의도를 추론하고 비판적으로 전유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이는 디지털 기술이 매개하는 사회와 문화의 급격한 변동에서 기성세대 역시 적응해야 할 과제다. 혹자는 한국어의 70%를 차지한다는 한자어 교육 강화를 얘기하지만, 현대 한국어는 영어를 비롯한 다양한 외국어와 긴 단어나 문장을 축약한 용어 등의 유입으로 빠르게 분기하며 변화하고 있다.
오늘날 한류나 케이(K)-콘텐츠로 대변되는 한국 대중문화에 한국은 없다는 지적도 있듯이, 한국문화나 한국성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다양한 가치들이 뒤섞이고 충돌하는 가운데 새롭게 생성 중인 잡종성의 산물이다. 한국어 역시 무수한 전쟁과 지배, 교류를 거치며 한자어를 비롯해 영어, 일본어 등이 혼재된 감염된 언어다. 이는 결코 순수하거나 본질적인 것일 수 없다. 다만 구성원 사이 원활한 소통을 통한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깊이 읽고,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논리적으로 대화하고, 타인과 공감하는 언어능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교육정책의 변환과 실천에 대한 사회적 숙의가 필요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