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왜냐면

위기청소년 보호 위해 소년법 우범규정 삭제 신중해야

등록 2023-01-16 19:01수정 2023-01-17 02:37

넷플릭스 드라마 <소년심판>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드라마 <소년심판>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왜냐면] 최원훈 | 법무부 인천보호관찰소 소년과 책임관

법무부는 최근 발표한 소년범죄 종합대책을 통해 소년보호절차에서 우범소년에 대한 과도한 보호처분은 폐지하기로 했다. 그러나 우범소년에 대한 장기 보호관찰·장기 소년원 송치 처분은 없애되, 최소한의 사법적 개입은 유지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국회·시민단체·학계는 죄를 범할 우려만으로 아동·청소년에게 사법적 처분을 부과할 수 있는 우범규정은 시급히 삭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소년법의 우범규정 삭제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성이 있다. 소년사법체계가 우범소년에게 선제적·적극적으로 개입해서 보호하지 않으면,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현장의 사례를 보자.

ㄱ(13)양은 중학교 1학년이다. 유아기에 부모가 이혼했고, 초등학교 3학년 때 어머니가 재혼했다. 새아버지는 상습적으로 ㄱ양을 폭행했다. ㄱ양은 새아버지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집을 나갔다. 아니 탈출했다. 거리를 떠돌던 ㄱ양은 청소년 쉼터로 갔다. 한동안 쉼터 교사들의 보호를 받으며 안정적으로 생활했으나, 쉼터 규정을 지키지 않으면서 교사·동료들과 갈등이 생겼다. 새아버지의 학대로 어린 나이에 우울증과 분노조절장애 진단을 받았지만,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했다. 공동체 안에서 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 쉼터를 뛰쳐나갔다. 그 무렵 새아버지는 폭력으로 교도소에 수감됐고, 어머니는 자살했다.

ㄱ양은 아직 죄를 범하지 않았으나, 성격과 환경에 비춰 앞으로 범죄를 저지를 우려가 있는 우범소년이다. 가정은 해체되었고 학교는 이미 학업 유예됐다. 쉼터의 장은 법원 통고제도를 활용해 사건을 가정법원에 직접 접수했다. 소년부 판사는 ㄱ양을 소년분류심사원에 4주 동안 위탁했다. 소년분류심사원은 소년부 판사가 사건을 조사·심리하는 데에 필요한 소년의 신병을 보호하는 ‘수용기관'인 동시에, 비행원인을 규명하고 재비행을 예측하는 ‘진단기관'이다. 또한 인성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교육기관'의 역할도 하고 있다. 소년분류심사원은 교육과 상담, 신경정신과 진료 등을 통해 ㄱ양에 관한 분류심사서를 작성해 법원에 제출했다.

쉼터를 뛰쳐나온 ㄱ양을 방치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ㄱ양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만난 비슷한 처지의 또래들과 어울리며 거리를 방황할 것이다. 배가 고파 편의점에서 과자를 훔치고, 아파트 주차장을 떠돌며 문이 잠기지 않은 차 안으로 들어가 현금을 훔칠 수도 있다. 채팅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성인들과 성매매를 해 생활비를 마련할지도 모른다.

판사는 ㄱ양에게 보호관찰 처분이나 7호 처분(병원이나 의료재활소년원 위탁)을 결정할 가능성이 크다. ㄱ양에게 치료와 교육, 보호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ㄱ양을 치유하기 위한 의료재활소년원이 없다. 대전소년원이 의료보호시설로서 일부 기능만 수행하고 있다.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위기 청소년을 교화하는 소년원을 혐오시설로 인식하고, 소년에 대한 차별적 낙인을 강화하는 님비(NIMBY·혐오시설 기피) 현상 때문이다. 우범소년 규정이 어른의 시각에 편승해 아동·청소년의 권리를 침해하고 우범소년에 대한 부당한 차별과 낙인을 정당화하며, 근본적인 문제 인식을 회피한 채 손쉬운 대안만 제시한다는 일각의 비판도 있다. 어른의 책임을 소년에게 떠넘기는 것과 같다는 주장도 들린다. 그러나 가정과 학교, 사회로부터 소외된 ㄱ양을 국가가 치료·교육·보호하는 정책은 손쉬운 대안이 아닌, 현재로서는 유일한 대안이다.

소년법의 우범규정은 ㄱ양에 대한 차별과 낙인을 극복하기 위한 최소한의 사법적 개입이다. 삶에 지친 ㄱ양이 가녀린 손목에 그었던 상처를 감싸 안는 것은 국가의 의무이자 책임이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사설] ‘모든 책임 지겠다’는 사령관, 내 책임 아니라는 대통령 1.

[사설] ‘모든 책임 지겠다’는 사령관, 내 책임 아니라는 대통령

[사설]“탄핵되면 헌재 부수라”는 인권위원, 그냥 둬야 하나 2.

[사설]“탄핵되면 헌재 부수라”는 인권위원, 그냥 둬야 하나

[사설] 의정갈등 1년, 환자들이 얼마나 더 고통 감내해야 하나 3.

[사설] 의정갈등 1년, 환자들이 얼마나 더 고통 감내해야 하나

그 많던 북한군은 다 어디로 갔나? [정의길의 세계, 그리고] 4.

그 많던 북한군은 다 어디로 갔나? [정의길의 세계, 그리고]

가요사 박찬호, 말없이 떠나가다 [진옥섭 풍류로드] 5.

가요사 박찬호, 말없이 떠나가다 [진옥섭 풍류로드]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