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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국내 반도체장비기업이 세계 시장의 배후조정자 되려면

등록 2023-01-30 18:35수정 2023-01-31 02:35

주요 반도체 장비 기업의 전체 특허 중 ‘미국 특허’ 비중
주요 반도체 장비 기업의 전체 특허 중 ‘미국 특허’ 비중

[왜냐면] 금연욱 | 카이스트 기술경영전문대학원 석사과정

지난해 10월 미국은 중국에 대한 첨단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 정책을 발표했다. 세계 반도체 장비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 어플라이드머티리얼스(AMAT), 3위인 램리서치(Lam Research), 5위인 케이엘에이(KLA) 모두 미국 기업인만큼 이는 중국에 대한 고강도 수출 규제로 해석할 수 있다. 점유율 2위이자 노광 장비에서 절대적 영향력을 지닌 에이에스엠엘(ASML)이 속한 네덜란드와 점유율 4위인 도쿄일렉트론(TEL)이 속한 일본 또한 미국의 수출 제재에 동참하기로 결정했다. 이로써 중국은 전체 반도체 장비 시장에서 60% 이상 점유율을 차지하는 5개 기업의 장비를 구매할 수 있는 대부분의 길이 막히게 됐다.

반도체 산업은 ‘장비 집약적’ 산업이라 할 수 있다. 아무리 뛰어난 설계를 해도 설계자의 요구대로 웨이퍼(반도체 생산을 위한 원형판)를 가공할 수 있는 장비가 없으면 제품을 생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반도체 기술’하면 반도체 장비 소비자이자 최종 제품 생산 기업인 삼성전자와 인텔을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그들이 생산하는 중앙처리장치(CPU)·메모리(RAM)와 같은 제품은 반도체 장비 기업의 기술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반도체 장비 기업은 ‘반도체 시장의 배후 조정자’로 불리기도 한다.

영국의 유명한 경제학자 패빗(Pavitt)의 이론에 따르면 반도체 장비는 전문 공급자형(Specialized supplier)으로 분류되며, 반도체 장비 소비자인 종합 반도체 기업(삼성전자 등)과 파운드리 기업(TSMC 등)은 가격보다 장비의 성능에 민감한 특성을 가진다. 5천억원에 육박하는 ASML의 극자외선(EUV) 장비를 줄 서서 기다려도 살 수 없다는 사실은 반도체에 관심 있는 사람은 한 번쯤 들어봤을 이야기다.

여기서 한 번 곱씹어 봐야 할 부분은 미국이 한국 반도체 장비 기업에 대해서는 중국으로 수출 제재를 발표한 적이 없다는 점이다. 장비 내부에 들어가는 부품이 미국산인 경우 중국 수출 제재 규정에 부딪힐 수 있다는 원론적 이야기 외에는 한국 반도체 장비 기업에 대한 그 어떤 뉴스도 접하기 어렵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정량적 지표인 특허에서 찾을 수 있다.

앞서 언급한 AMAT, 도쿄일렉트론, ASML, 램리서치, KLA 등 글로벌 톱5 반도체 장비 기업과 세메스, 주성엔지니어링, 원익아이피에스(IPS), 테스, 피에스케이 등 국내 톱5 반도체 장비 기업이 2000~2021년 출원한 특허를 비교해봤다. 글로벌 톱5 기업에서 출원한 특허는 모두 5만8931개였지만, 국내 톱5 기업의 특허 출원 수는 1만2705개로 글로벌 톱5 기업의 22%밖에 되지 않았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네덜란드의 ASML과 일본의 도쿄일렉트론을 포함한 글로벌 톱5의 모든 특허는 미국에 출원돼있는 반면, 국내 기업은 11.5%의 특허만 미국에 출원했다는 것이다. (그래프 참조) 이는 90%에 육박하는 대부분의 특허는 국내에서만 유효한 내수용 특허라는 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특허의 특성상 한국 특허는 한국이 아닌 세계 시장에서는 그 가치를 인정받거나 경쟁력을 지니기 어렵다는 점을 미뤄볼 때, 그동안 국내 반도체 장비 기업들은 국제 시장을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반도체 장비 기업이 중국으로 수출이 부진한 이유를 가격 대비 성능 경쟁력, 즉 가성비에서 찾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패빗 이론과 ASML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소비자인 반도체 생산 기업은 성능이 뛰어난 반도체 장비에 대해서는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이번 미국 규제 때문에 반도체 기술 성장에 발이 묶여버린 중국의 다수 반도체 생산 기업은 대체재를 찾으려고 노력할 것이고, 이는 우리나라 반도체 장비 기업들에는 큰 기회가 될 수 있다. 내수 시장에 집중해왔던 지금까지 틀에서 벗어나 이번 기회에 적극적으로 해외 시장을 공략해 한국 반도체 장비 기업의 품질, 더 나아가서 브랜드 파워가 더욱더 올라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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