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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상처 주는 건 어른의 ‘편견’이다

등록 2023-02-27 19:21수정 2023-02-28 02:36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왜냐면] 문승욱 | 학원 강사

학원에서 3년 넘게 일하면서 가끔은 교직에서 근무하는 친구들이 대단하다고 느낀다. 학교는 공부뿐 아니라 삶을 배우는 곳이기에, 교사는 공부 이상의 것을 아이들에게 전하곤 한다. 성격이나 가정환경 등 학생의 여러 특질을 고려하면서 세심하게 살펴야 할 책임이 있다.

나는 아이들에게 영어 그 자체를 가르치기만 한다. 시간당 1만8천원을 받고 아이들의 시간을 아껴주고 선행학습을 돕는다. 여기에 어떠한 정서적 교감은 사치다. 아이들은 오롯이 점수 향상을 위해 학원에 나온다.

아무래도 스스로를 ‘도구화’했던 탓일까? 아이들에게 세심한 관심을 두지 않을 때가 더 많았다. 얼마 전 수업시간에 한 학생이 다른 학생에게 욕을 했다. 심각한 욕은 아니고 서로 장난치는 수준의 욕이었다. 그때 나는 욕을 한 학생에게 “그 욕, 집에 가서 엄마한테도 할 수 있으면 해”라고 말했다. 내가 했던 건 잠시 아이를 다그치는 행위, 거기까지였다. 그런데 이후 아이의 부모님과 상담하면서 그 학생이 아버지와 단둘이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이 사실을 알고 나에게도 편견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당연히 어머니가 계시겠지’하는…. 여전히 사회의 ‘정상성’을 스스로 규정하고 있던 것이다. 이게 미안해 그 학생을 불러 “혹시나 상처받았으면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고,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엄마 없는 게 누군가가 사과해야 할 일은 아니잖아요?”

그 학생에게는 엄마가 없는 것이 창피한 일도, 사과할 일도 아니었다. 그 아이는 아버지로도 충분했다. “엄마 없냐?”, “아빠 없냐?”는 흔히 학생들 사이에서 욕으로 사용된다. 교육을 덜 받았다는 의미로 많이 쓰인다. 그런데 여기에는 알게 모르게 편견이 깊이 반영돼 있다. 엄마나 아빠가 없으면 ‘정상적’으로 자랄 수 없을 것이라는 편견. 거꾸로 말하면, 나는 욕을 했던 학생이 흔히 말하는 ‘불우한 가정’에서 자라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교우관계도 좋고, 성격도 밝았고, 성적도 꽤 좋았기 때문이다.

결국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건 어른이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존재가 아이의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건 맞다. 그러나 아이를 키우는 어른이 어떤 어른인지가 더 중요하다. 엄마가 없다고, 아빠가 없다고, 혹은 부모가 아닌 제3자 밑에서 자랐기 때문에 결핍이 존재하는 건 아니다. 흔히 ‘정상가족’이라 불리는 안에서도 우리는 결핍을 느낀다. 우리 사회에 보듬어야 할 아이들이 많다. 나는 그런 아이들이 자라는 데 도움이 되는 좋은 어른일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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