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왜냐면

독립운동 훈격 재평가, 문제진단부터 틀렸다

등록 2023-03-15 18:42수정 2023-03-16 02:41

박민식 국가보훈처장. 연합뉴스
박민식 국가보훈처장. 연합뉴스

[왜냐면] 박덕진 | ‘시민모임 독립’ 대표

국가보훈처는 지난 5일 보도자료를 내고 독립운동가에 대한 훈격 재평가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독립유공자 포상을 본격 실시한 1962년 이후 60년 만에 처음으로 훈격 재평가를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재평가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각계 전문가로 ‘독립운동 훈격 국민공감위원회’를 구성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훈격 상향 주장이 제기돼온 대표적 독립유공자로 김상옥, 박상진, 이상룡, 이회영, 최재형, 나철, 헐버트 등을 거론하며 서훈 이후 추가 발굴된 공적 등을 소개했다. 상훈법의 취지가 동일 공적에 대한 중복 수여를 금지하는 것에 있지, 동일하지 않은 공적에 대해서는 추가 포상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렇게 훈격 재평가 작업의 얼개를 제시했다. 보훈처의 입장은 일면 타당하다. 특히 거론한 독립운동가 일부에 대한 훈격 상향 조정은 만시지탄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부분은 전체를 대표하지 않는다. 왜곡된 독립운동가 서훈 체제를 유지하면서 일부 독립운동가의 훈격을 상향 조정하는 것은 언 발에 오줌 누기요, 썩은 기둥과 대들보는 그대로 두고 서까래만 갈겠다는 것이다. 독립운동가 서훈 체계가 얼마나 왜곡됐는가? 임병직(1893~1976년)이란 인물이 있다. 이승만의 비서 출신으로 이승만 정부에서 외무부 장관과 유엔 대사를 지냈지만, 국민의 99%가 모르는 인물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는 김구, 윤봉길, 이봉창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최고등급 대한민국장 독립운동가다.

보도자료를 보면,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은 “독립유공자 중 여운형 선생 등은 당시 공적을 기준으로 심사·포상하는 것이 원칙임에도 공적에 대한 재평가 없이 ‘독립운동 공적이 아닌 사회적 영향력’ 등을 평가에 반영해 최초 포상 이후 불과 3년 만에 기존 포상보다 높은 훈격으로 추가 포상해 일각에서는 선심성 및 형평성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며 노무현 정부 시절 진행된 여운형 선생에 대한 대한민국장 서훈을 비판했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여운형 선생에 대해 광복 이후 50년이 흐른 2005년에야 서훈된 것은, 그것도 2등급 대통령장이 주어진 것은 선생이 사회주의자라는 일부의 공격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땅히 대한민국장을 받아야 할 선생에게 대통령장이 주어진 것은 오류였다. 노무현 정부는 이를 정정한 것이다. 오히려 박 처장이 국민에게 답해야 한다. 임병직 대한민국장은 적절한가? 스스로 납득이 되는가?

대한민국은 하늘에서 떨어진 나라가 아니다. 선열들의 피와 땀으로 일군 나라다. 그들의 자취를 찾아 최대한의 명예로 보답하는 것, 그것이 독립운동가 서훈의 요체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은 이런 작업을 통해 더욱 강고해진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현행 서훈체계의 제1원칙은 ‘배제’다. 일본군의 경복궁 침탈에 맞서 싸웠던 전봉준, 최시형 등 2차 동학 농민군은 서훈 대상이 아니다. 김원봉, 이극로, 김두봉 등 북으로 간 독립운동가 역시 대상에서 제외했다. 헌법 전문에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밝혔지만, 소용이 없다. 이승만 암살을 모의했거나 시도했던 고중민, 김시현 등도 제외다.

임시정부가 국장으로 예우한 김가진을 끝내 서훈하지 않는 대목에 와서는 독립운동가 서훈제도의 존립 근거마저 의심하게 된다. 독립운동가 서훈의 요체는 배제가 아니라 ‘존중’이 돼야 한다. 독립운동의 기점은 1894년 일본군의 경복궁 침탈에 저항한 운동으로 잡아야 한다. 당연히 2차 동학 농민군을 포함해야 한다. 물론 독립운동했더라도 나중에 친일로 변절했다면, 당연히 서훈 대상자가 아니다. 그러나 1945년 8월15일 현재 독립운동에 참여하고 있었다면, 그가 북으로 갔건, 이승만 암살 음모에 참여했건 독립운동가로 서훈해야 한다. 강도 일본에 분연히 저항한 그의 정신을 기려야 한다. 철 지난 반공주의 등으로 독립운동가의 삶을 재단하는 무례를 멈춰야 한다. 시작을 보면 끝도 짐작할 수 있다. 서훈제도 문제의 진단이 틀렸는데, 어떻게 제대로 된 처방이 나오겠는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부당 지시 왜 따랐냐”…윤석열 ‘유체이탈’ [2월7일 뉴스뷰리핑] 1.

“부당 지시 왜 따랐냐”…윤석열 ‘유체이탈’ [2월7일 뉴스뷰리핑]

공은 나에게, 책임은 부하에게 [세상읽기] 2.

공은 나에게, 책임은 부하에게 [세상읽기]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리는 ‘양심의 구성’ [강수돌 칼럼] 3.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리는 ‘양심의 구성’ [강수돌 칼럼]

[사설] ‘모든 책임 지겠다’는 사령관, 내 책임 아니라는 대통령 4.

[사설] ‘모든 책임 지겠다’는 사령관, 내 책임 아니라는 대통령

윤석열, 의원 아닌 “간첩 싹 잡아들이라 한 것” 누가 믿겠나 5.

윤석열, 의원 아닌 “간첩 싹 잡아들이라 한 것” 누가 믿겠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