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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비핵화 실패는 엄연한 현실, 대북정책 새틀 짜자

등록 2023-04-03 18:20수정 2023-04-04 02:35

북한이 동해상으로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지난 3월27일 오전 서울역 대합실에 관련 뉴스가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이 동해상으로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지난 3월27일 오전 서울역 대합실에 관련 뉴스가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왜냐면] 차태서 |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일반적 인식과 달리 탈냉전 기간 남한의 주류 정치권에서 추구한 대북정책의 목표는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동일했다. 한반도 비핵화와 남북통일, 더 정확히는 북한의 핵개발 포기와 남한으로의 흡수통일이 바로 그것이다. 심지어 진보진영의 ‘햇볕정책’조차 보수진영과 구체적 방법론에서 몇 가지 대립각은 세웠지만 두 가지 최종목표는 공유했다.

보수가 상대적으로 공세적인 자유주의의 입장에서 경제 제재와 군사적 강압을 배합해 평양정권의 자체 붕괴 혹은 외부로부터의 정권교체를 추구했다면, 진보는 개성공단 사례가 대표하듯 기능주의적 접근을 통해 북한에 시장 메커니즘을 밀어 넣으려 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어쨌든 북한은 햇볕을 쫴 옷을 벗겨야 하는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탈냉전 30년의 대북한 정책은 결국 실패했다. 단극체제 아래서 자유세계질서의 규범을 어긴 ‘깡패국가’ 혹은 ‘악의 축’을 처벌하는 이슈로 북한문제가 규정된 최상의 대외적 조건이었음에도 실패했다. 패권국 미국 주도의 강도 높은 제재와 외교협상이라는 채찍과 당근의 조합이 여러 행정부를 거쳐 가며 시도됐지만, 우리는 비핵화도 통일도 달성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탈단극이라는 완전히 전환된 국제정치 구조 속에서 북한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심지어 현재 북한은 사실상의 핵보유국이자 ‘비대칭 확전’이라는 가장 공격적 핵교리를 갖고 남한(과 미국)을 상대로 핵전쟁을 벌일 군사기술적 완성도를 갖춰 가는 국가로 발돋움했다. 어느 모로 보나 김정은 정권은 더 이상 핵과 미사일을 ‘흥정’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있음이 분명해 보이며, 유엔 안보리에서 중국과 러시아가 반복적으로 대북 결의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해온 것에서 나타나듯 국제사회가 합심해 북한의 행동을 억제하던 집단 안보 거버넌스도 이제는 과거지사가 돼 버렸다.

따라서 더 이상 기존 탈냉전 30년의 자유주의적 가정과 전제 위에서 대북정책을 기획해나갈 수는 없다. 무엇보다 비핵화와 통일이 당분간 달성할 수 없는 목표라는 점을 완전히 인정한 뒤의 새로운 접근법을 고민해야만 한다. 결국 대안은 현실주의적 패러다임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핵보유국 북한과 공존할 수 있는 ‘공포의 균형’을 군사적 측면에서 구축하고, 군비통제 협상을 통해 핵을 머리에 이고도 안정적으로 남북관계를 운용할 수 있는 외교적 위험관리 방안을 주변국들과 함께 모색해야 한다. 당연히 이러한 해법은 불만족스러우며 정치적으로도 올바르지 않다. 핵균형 속에서도 늘 전쟁의 위험은 (의도된 계획이든, 인간적 실수에 의한 것이든) 상존할 것이고, 남북한 모두에서 안보논리의 우위 속에 자유와 인권 이상의 실현은 지연될 것이다.

그럼에도 매우 역설적이지만 이러한 불완전한 임시적 해법이야말로 과거 문재인 전 대통령이 말한 “남북이 함께 살든 따로 살든 서로 간섭하지 않고 서로 피해 주지 않고” 함께 사는 방법일 수 있다. 물론 그것은 따듯한 봄의 평화가 아니라 수십 년 동안 지속할 차디찬 겨울의 풍경일 테지만, 그런 긴 겨울을 준비해야 할 만큼 신냉전 초입에 서 있는 오늘날 한반도의 정세는 엄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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