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항 신항 4부두에서 대형 크레인이 수출 화물을 선적하고 있다. 연합뉴스
[왜냐면] 조병중 | 전 광운대 겸임교수·경영학 박사
2021년 무역수지 흑자 약 295억 달러, 세계 제8위의 무역 강국,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선진국으로 공식 인정했던 대한민국. 그러나 지난해 472억 달러의 무역수지 적자를 시작으로, 올해는 450억 달러로 예상되는 심각한 무역수지 적자에 직면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공급 불안정과 에너지 가격 급등에 따른 적자 요인도 있지만, 그보다는 지난해 5월 미국 주도의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아이피이에프, IPEF)가 출범하면서 공급망이 안보에 종속돼버린 것이 결정적이다. 반도체 수출 가운데 60% 넘게 차지하는 중국과 홍콩으로 수출이 안보 차원의 각종 규제와 제약을 받아 급감하면서, 이에 따른 부작용의 여파도 확대되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지난달 한일정상회담을 통해 수출규제 조치를 해제했다고는 하지만, 그동안 국산화에 주력했던 국내기업들은 수출규제 해제로 피해가 우려되는 등 대일 통상 분야에서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아이피이에프 출범에 따라 대중국 통상 분야는 안보경제에 종속되고, 대일 통상 분야는 경제안보에 종속돼 무역수지 악화가 매우 우려된다. 필자는 <한겨레> 2022년 7월5일치에 기고한
‘혜택 모호한 IPEF 참여, 한국 실익 세심한 검토를’에서 아이피이에프 4대 의제가 한국에 별 실익이 없음을 고찰한 바 있다.
무역(의제 I), 공급망(의제 II), 청정에너지 탈산소화 및 사회간접시설(의제 III), 조세 및 반부패(의제 IV) 등 4대 의제에 대해 우리가 유념해야 할 것은, 참가국들은 4개 모두 가입해야 할 의무가 없고, 각국의 경제 규모 등에 따라 유연성을 부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이피이에프가 신통상 의제 중심의 미국 주도 협력체 구축에 중심을 두고, 참가국에 대한 중국 보복의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 한국산 반도체 생산에 대한 보조금 문제를 비롯해 중국 내 한국 반도체 공장에 대한 미국의 엄격한 규제들은 한국의 반도체 산업의 사활이 걸려 있는 심각한 현안이 아닐 수 없다.
과거 우리나라의 무역구조는 미국·중국에서의 무역수지 흑자로 일본에 대한 만성적 무역수지 적자를 메꾸는 구조였다. 지난해부터는 대중 수출이 급감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무역수지 적자 폭은 증가일로에 있다. 2018년 한국의 무역수지 흑자국 1위였던 중국은 지난해 22위로 하락했다. 특히 공급망 투명성에 역점을 둔 아이피이에프는 참여국들이 반도체 등 중대한 분야에서 공급망의 투명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협력하고 세계 공급망의 탄력성을 강화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또 대상국을 언급하지 않지만, 중국에 대한 규제를 공동 연대할 것을 암시하고 있다. 반도체의 경우 ‘협력 국가 간 안정적 반도체 생산·공급’이라는 명분으로 미국, 한국, 일본, 대만 등 반도체 4국을 칩(chip) 4동맹으로 묶어 생산·공급한다면, 우리나라의 생산·공급망에 큰 위험이 따를 수 있으므로 우리나라는 실리적 통상정책을 우선해야 한다.
만성적 대일 무역수지 적자에 대해서는 수입 의존도가 높은 분야를 수입대체산업으로 지정하고, 국산화 비율을 지속적으로 높여나가야 한다. 의존도 70%가 넘는 전략물자 품목은 100여개에 달한다. 주로 반도체 제조장비, 정밀 화학 원료, 플라스틱과 같은 기초 소재다. 2019년 7월부터 일본은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에 대한 수출규제로 국내 업체들이 국산화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3월 불화수소 등 3종과 관련한 수출규제 조치를 해제해 국산화 지연이 우려된다. 대일 수입의존율이 높은 산업에 대해서는 수입대체산업으로 지정해 국산화 비율을 꾸준히 높여나가는 정책이야말로 만성적 대일 무역적자를 극복하는 지름길이다.
통상 분야가 안보에 종속되거나 왜곡된다면, 심화되고 있는 무역수지 적자를 극복할 수 없다. 아이피이에프의 출범과 한·미·일 안보협력체제에서는 통상환경의 악화가 심히 우려된다. 아이피이에프의 공급망(의제 II)에는 탄력적으로 대응하고, 우리 경제여건에 맞는 공급망을 구축해 자유로운 통상 활동을 보장해야 한다. 통상정책이 한·미·일 경제안보 협력에 예속돼서는 안 된다. 우리 기업이 반도체는 물론 각 분야에서 중국을 포함한 세계시장을 무대로, 수출입 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실리적 통상정책을 펴나가야 한다. 나아가 통상 분야 전문가들을 양성해 한국에 불리한 통상 관련 행정·법률 제정을 감시·협상할 수 있도록 하자. 그리하여
한국 기업들이 불리한 차별 대우를 받지 않도록, 사후약방문이 아닌 사전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