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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세계 예방접종주간’ 예방가능 질병에 고통받는 아이 없어야

등록 2023-04-24 18:36수정 2023-04-25 02:36

이종근 국제로타리 강원지구 소아마비 퇴치 위원장이 로타리 회원들 앞에서 소아마비 퇴치의 필요성에 대해 강연을 하고 있다. 국제로타리 제공
이종근 국제로타리 강원지구 소아마비 퇴치 위원장이 로타리 회원들 앞에서 소아마비 퇴치의 필요성에 대해 강연을 하고 있다. 국제로타리 제공

[왜냐면] 이종근 | 국제로타리 강원지구 소아마비 퇴치 위원장·도시그룹 이종근종합건축사사무소 대표

나는 생후 9개월에 소아마비에 걸려 양쪽 다리가 모두 마비됐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당시는 예방접종이 보편적이지 않았기에 소아마비에 걸려 몸이 불편한 아이가 한 반에 한두 명은 있었다. 친구들과 가족들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길을 걸을 때면 목발을 놓치거나 보조기가 풀려 자빠지기 일쑤였다. 나는 중증 지체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의대 입학도 거부당했다. 지금은 건축사사무소의 대표지만, 대학 시절 평행자가 도입되지 않았을 때는 선 하나 똑바로 그리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이제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소아마비에 새롭게 걸리는 아이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1980년대만 해도 전 세계에서 야생 소아마비 바이러스로 인해 소아마비에 걸리는 사람은 한 해에 35만 명에 이르렀지만, 올해는 3월까지 발병 건수가 단 1건에 불과하다. 30년 사이 99.9%가 줄어든 수치다. 전문가들은 곧 소아마비가 천연두에 이어 인류가 두 번째로 퇴치한 인간 질병이 될 거라고 예상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답은 예방접종이다. 내가 활동하는 봉사단체 로타리는 1979년 첫 대규모 소아마비 예방접종 프로젝트를 시작한 뒤 세계보건기구, 유니세프,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 등과 협력해 지난 30여 년 동안 전 세계 122개 나라 25억 명의 아이들에게 예방접종을 실시했다. 소아마비 발병 국가가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단 두 나라밖에 남지 않은 지금도 이 단체들은 방문 접종, 대규모 예방접종 캠페인, 감시·추적 활동을 통해 전 세계적인 집단 면역, 궁극적으로는 소아마비라는 질병의 완전한 박멸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나는 <한겨레> 3월22일 기사 ‘[단독] 필수 접종 안 한 아동 3700명 ‘위기 신호’ 못 잡은 정부’ 기사를 보다가 참담한 마음을 가눌 수가 없었다. 기사에는 ‘지난해 기준 파상풍 등 정기 예방접종을 하지 않은 만 3살 미만 아동이 전국적으로 4067명에 달한다’는 내용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 또한 지난해 7월, 아동 백신 접종률이 30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다는 데이터를 발표한 바 있다. 특히 디프테리아, 파상풍, 백일해 백신을 한 번도 접종받지 못한 아동은 2021년 한 해에만 2500만 명이다. 너무 많은 어린이가 예방 가능한 질병 때문에 목숨의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이다.

나는 종종 로타리 회원들을 대상으로 소아마비 퇴치의 필요성에 대한 강연을 한다. 그러다 보면 사람들이 묻는다. 왜 우리가 소아마비 퇴치를 위해 계속해서 힘써야 하느냐고, 이쯤 했으면 충분하지 않느냐고. 그럴 때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내 삶을 되돌아봤을 때 그 어떤 아이도 이 병에 걸려서는 안 된다고, 소아마비를 앓은 지 70년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길을 걸을 때면 한시도 마음이 편할 때가 없다고, 소아마비를 가지고 살아온 한평생은 너무나 힘들었다고.

4월 마지막 주는 예방접종의 힘을 강조하고 널리 알리기 위해 세계보건기구에서 지정한 ‘세계 예방접종 주간’이다. 소아마비를 비롯해 세상의 많은 치명적인 질병들이 예방접종으로 퇴치가 가능하다. 어떤 사정으로든 그동안 아이가 예방접종을 받지 않았다면, 이 주에는 꼭 시간을 내서 병원을 방문하라고 말하고 싶다. 예방접종을 받지 않았을 때의 고통을 몸소 느낀 1인으로서, 그 어떤 아이도 예방 가능한 질병으로 인해 고통 받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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