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 3월13일 오후 서울 중구 LW 컨벤션에서 열린 2023년 글로컬위원회 제1차 회의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왜냐면] 이혁우 | 배재대 기획처장·행정학과 교수
교육부의 대학정책에 ‘벽 허물기’란 단어가 등장했다. 관청 용어로는 낯설지만 메시지 전달은 확실하다. 학과 간, 대학 간 문턱을 낮추거나 아예 없앨 것. 교수 한명이 자기만의 아성을 쌓아서는 학문 발전도 없고, 제대로 된 교육도 어렵다는 진단이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대학은 428개이다. 이들 대학은 정원이 많든, 적든 전 계열의 백화점식 학과를 가졌다는 특징이 있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라 많은 대학에서 구조조정이 이뤄졌음에도 여전히 많은 대학이 그렇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사립대학보다 국립대학이 훨씬 심하다.
그래서일까. ‘글로컬 대학 30 사업’이 등장하며, 지방의 국립대학들이 벽허물기를 하겠다며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 사업은 정부가 과감한 혁신에 나서는 비수도권 대학 30곳을 선정해 2026년까지 5년에 걸쳐 1곳당 1000억 원씩 집중적으로 지원해 글로벌(세계)과 로컬(지방)을 아우르는 대학으로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지방 국립대학들이 그 동안의 밀린 숙제를 한꺼번에 하려는 이유는 교육부가 내 놓은 판돈 때문이다. 총사업비 1000억 원에 통합 시 2000억 원이다. 등록금 동결과 학령인구 감소를 한꺼번에 맞아 역량이 축소되고 비틀대고 있는 지방 사립대학에게 이 정도 재정지원은 미래의 생존을 결정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규모다. 108개 대학이 5월 연휴에도 혁신계획서를 쓴다며 분주했다. 교육부에 안테나를 세워 온 대학들은 이번 변화는 과거와는 다를 것이라고 보는 것 같다. 어차피 10년 뒤, 학령인구가 지금의 절반으로 줄어들면 상당수 대학은 없어져야 한다.
좋은 점은 지방대학이 진정성 있는 혁신을 생각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글로컬 대학 30 경쟁에 뛰어들려면 어쨌든 벽도 허물어야 하고, 경직된 경영도 효율화해야 한다. 자기 전공 분야, 우리 학과, 우리 단과대학, 우리 대학엔 1㎝ 틈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식의 대학경영을 지금도 하는 대학은 없겠지만, 대학이 민간의 변화 속도에 한참 못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원래 벽을 쌓고 그 안에 있으면 세상 돌아가는 것에는 더딜 수밖에 없다. 그렇게 조용히 경쟁력을 잃어가다 깨달을 때쯤 되면 학생들은 떠나고 없어질 것이 어쩌면 지금 혁신하지 않는 대학들의 운명일 것이다. 재정지원이라도 받고, 지금이라도 혁신해볼 건가, 아니면 혼자 벽 세우고 고립되어 지내다 무너질 것인가. 글로컬 대학 30 사업이 지방대학에 묻는 것은 정확히 이것으로 해석된다.
지방대학 입장에서는 걱정도 있다. 대학 혁신, 대학 통합의 벽 허물기라는 그 어려운 것을 해 내는 것은 사립대학보다 국립대학이 더 쉽다는 것이다. ‘사립대학이 국립대학보다 의사결정이 훨씬 빠르고 가벼울 텐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은 아니다. 경영 혁신을 국립대학보다 빠르고 과감하게 할 수 있는 사립대학이 있다 해도 벽 허물기, 특히나 대학 통합과 같은 거대 결정에 있어서는 머뭇거릴 수밖에 없다. 각자 경영주체가 다른 사립대학이 합친다는 것은 기업의 합병보다도 훨씬 어려운 일이다.
반면 국립대학은 다르다. 어차피 국립대학의 경영 주체는 국가이고, 정부가 벽 허물기를 밀어붙이는 상황에서 학령인구 감소라는 상수(常數)에다 통합하면 막대한 재정지원을 받을 수도 있다. 글로컬 대학 30에 나오는 대학통합 사례 거의 대부분이 국립대학인 이유도 이것이다. 물론 국립대학의 갑작스런 혁신은 반가운 일이다. 대학의 혁신은 교육 혁신과 산학 혁신, 글로벌 혁신으로 이어져, 학생과 지역산업, 국가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고 통합의 혁신을 내세운 국립대학이 글로컬 대학 30의 우선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
지금 지방의 대학구조는 지역 거점 국립대학이라는 초대형 국립대학과, 중소 국립대학, 그리고 사립대학으로 이뤄져 있다. 여기에 지역 거점이라는 명분으로 안 그래도 이런저런 재정 지원에 상대적 우위에 있는 국립대학들이 다시 다른 국립대학과 합치고, 거기에 막대한 정부 재정 지원이 또 투입된다면, 지방의 사립대학은 더 이상 설 곳이 없어진다. 지금까지 사립대학과 국립대학은 사실상 같은 교육 서비스를 제공함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정해 놓은 등록금 규제로 불공정 경쟁을 해 왔다. 대학의 노력, 대학의 특성화, 대학의 혁신에 의해 대학의 성과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국립이냐 사립이냐에 따라 대학의 성과가 결정되는 구조를 합리적이고 공정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래서 글로컬 대학 30으로 혁신의 유전자를 심으려면, 사립대학과 국립대학의 구조에 대한 이해가 먼저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