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박경미 | 민주당 교육특위 위원장·전 청와대 대변인
지난해 9월 출범한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가 보이지 않는다. 킬러문항에서 시작된 수능 논란, 서초구 교사 사건에 따른 교권 회복 문제와 같이 교육계의 대형 이슈가 생겨도 목소리를 내지 않고 존재감이 없다. 국교위 설치는 20년 전부터 여러 이유로 단골 대선 공약이자 교육계의 숙원이었다.
첫째, 교육정책의 일관성과 지속성을 위해 초정권적 교육 기구를 두고자 한 것이다. 지난 몇십 년 동안 새 정권이 들어서면 교육과정과 교과서가 바뀌고 그에 따라 입시제도가 바뀌는 피곤한 변천사를 되풀이해 왔다. 공교육에 대한 국민의 불만과 불안감에는 치열한 입시경쟁과 더불어 교육과정과 입시제도가 자주 바뀌는 것도 한몫한다.
둘째, 대한민국 헌법 31조가 보장하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위해 초당적 독립기구를 두고자 한 것이다. 한국 근현대사를 둘러싸고 사회적 논란이 증폭된 것처럼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 흔들릴 때가 적지 않았다.
이런 기대 속에 출범한 국교위지만 현실은 그 반대로 가고 있다. 정치적 중립성이 필요한 위원장 자리에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주역을 임명한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 이념적 편향성이 강한 국교위 구성원 면면을 보면 합의제 행정위원회인 국교위가 숙의 민주주의를 구현하기보다는 정파 갈등의 장으로 변질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 국교위는 2022 개정 교육과정을 짧은 시간에 부실 졸속 심의하면서도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꾼 교육부 심의본을 유지하고, 이념과 무관한 ‘노작교육’을 삭제해 전문성 부족을 드러냈다.
새로운 교육과정에 기초해 집필되는 교과서도 불안하다. 교과서를 심사해 승인하는 검정 업무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담당한다. 원래 평가원은 정책 연구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교육부 소속이 아니라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관이고, 원장도 교육부 출신을 배제해왔다. 그런데 6월 모의평가에 대한 책임을 떠안고 교수 출신 원장이 물러나자 관례를 깨고 교육부 출신 원장을 앉혔다. 새 원장은 공공연하게 일제 강점기를 통해 조선인의 삶이 윤택해졌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펼치고, 평가원이 위치한 충북 진천보다 서울에서 교육부와 대통령실 눈치를 보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학교 교육의 ‘헌법’에 비유되는 교육과정을 심의·의결하는 국교위뿐 아니라 수업의 바이블인 교과서의 검정 업무를 담당하는 평가원 수장까지 뉴라이트 계열이라 볼 수 있다.
최근에 벌어지는 일련의 상황이 교육에 미칠 파장이 걱정스럽다. 앞으로 우리 아이들이 배울 역사 교과서에 뉴라이트 역사관이 반영되고 홍범도 장군과 위안부가 지워지고, 항일 독립운동 왜곡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물론 박근혜 정권에서 명운을 걸고 추진했던 국정교과서와 뉴라이트 역사관을 반영한 교학사 교과서를 깨어있는 시민의 힘으로 막아낸 바 있으니, 앞으로도 그 단결된 힘을 믿어보고자 한다.
출범 1년을 맞는 국교위는 설립 취지에 부합하는 역할을 해나가기 바란다. 국가교육발전계획의 수립, 교육과정 고시와 더불어 교육현안에 대한 공론화가 국교위의 주요 업무다. 최근에 벌어진 수능 문제, 교권 회복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대학 입시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고, 교사의 업무가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이를 위한 공론화는 딱 떨어지는 ‘정답’을 도출하기보다는 가장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첨예한 이해관계가 부딪히는 교육 문제를 다룰 때, 사회 구성원의 생각들이 얼마나 다른지를 드러내고 이견의 폭을 좁히며 합의를 이뤄가는 공론화는 매우 유용한 방식이다. 국교위는 정치색을 빼고 역사교육 개입은 원천 배제하고 교육 현안에 대해 다양한 교육 주체 간 사회적 합의를 이끄는 데 주력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