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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소통·대화하는 학교 문화? ‘관료적 교장제’ 손질이 첫발!

등록 2023-09-20 18:59수정 2023-09-21 02:36

학부모의 민원에 시달리다 목숨을 잃은 대전 초등학교 교사가 당시 근무했던 학교 앞에 항의성 근조화환이 놓여있다. 연합뉴스
학부모의 민원에 시달리다 목숨을 잃은 대전 초등학교 교사가 당시 근무했던 학교 앞에 항의성 근조화환이 놓여있다. 연합뉴스

[왜냐면] 김천영 | 전 전교조 여주지회장

서울 서초구 초등학교 젊은 선생님의 49재가 끝나고 나자 서울, 용인, 군산, 대전, 청주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선생님들이 다시 뉴스에 나온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선생님이 꽃잎처럼 붉게 이 땅을 물들여야 이 행렬이 끝날 것인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학교에서 교육적 활동이 아동복지법에 따른 아동 학대로 고발당해 선생님이 교육청으로, 경찰서로, 검찰청으로 불려 다니고, 직위해제를 당한 뒤 변호사를 선임하고 소장을 준비하느라 밤을 새우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나의 교직 35년을 돌아보면 대부분의 학부모님은 학교와 선생님을 믿고 자기 자식의 미래를 위해 선생님과 같이 고민하고 소통했다. 교사의 말이라면 어떤 말을 해도 믿는, 아니 믿어야 한다고 믿는 분들이었다. 물론 그렇지 않은 학부모님도 소수지만 있었다. 여러 가지 원인이겠지만 학교와 교사를 불신해 문제가 점점 커지는 경우도 많았다. 나 역시도 수많은 문자 폭탄에다 갑자기 찾아와 고래고래 소리부터 지르는 학부모, 자식의 잘못은 전혀 인정하지 않은 채 남 탓만 하는 학부모를 많이 보아 왔다.

죽음의 원인에는 관료적 교육부와 교육청, 교육 관련 법, 입시 경쟁, 우리 사회 양극화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소통 부족이 큰 몫을 차지한다. 학교에서 발생하는 여러 사건은 학부모와 선생님의 소통과 대화 속에서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소통과 대화가 잘 이뤄지는 문화를 가진 학교 대부분은 교장이 그 문화를 주도한다. 예를 들면 교장 공모제로 평교사가 교장이 된 학교들이다. 여기 교장들은 교육청이나 옆 학교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의 교육 소신대로 학교 문화를 만들어 간다. 물론 학부모님과의 소통은 빼놓을 수 없는 최우선 과제다. 학부모회가 활성화하고 아빠들 모임이 활성화한 다음엔 교육과정 문제는 그리 어려움 없이 동의가 이뤄지고, 학교가 개방되고 교실이 개방되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 되는 것이다.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어느 한 선생님의 ‘학부모가 찾아와 항의하는 것은 그래도 참을 수 있었지만 내 편이라 믿었던 교장 선생님의 꾸짖음과 호통은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는 인터뷰 기사가 오래 기억에 남는다. 어느 정신과 의사의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서 위로가 아니라 오히려 그와 반대로 받은 상처는 더 깊은 트라우마를 남길 수 있다’는 말 때문이다.

교사들은 이미 알고 있다. 현재 승진 제도에서 교장이란 자리는 그저 개인의 욕심일 뿐이고 안락의 한 증거에 지나지 않음을. 교장은 어떤 교사들이 되는가. 물론 능력 있는 교사다. 그 능력은 어떤 능력인가. 여기엔 여러 가지 의견들이 분분하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교육자의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도구는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내가 보기엔 이미 교사가 된 자질에 담임 경력만 일정 이상 채우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다 아는 바와 같이 교장은 일제 강점기 근대교육의 출발과 함께 시작됐다. 황국신민을 기르기 위한 교육에 교장은 충실한 일제의 관료이며 말단 관리자였다. 아직도 몇몇 학교에 걸려있는 제복을 입고 콧수염을 기른 교장의 사진들을 보라. 일제는 청산되지 않은, 살아있는 역사인 것이다. 뒤를 이은 대한민국 정부는 일제가 물러난 학교에 교장이 필요했다. 일제에 충성한 교사가 뒤를 이어 교장이 됐으며 그래도 부족하면 대학 졸업장만 있어도 교장이 됐다. 정부는 교육을 책임질 교장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말을 잘 듣고, 말 안 듣는 교사들을 감시할 사람이 필요한 것이었다.

그렇게 출발한 교장의 역사는 이 나라의 교육을 비틀었다. 교장은 사리사욕을 채우고 권력욕을 채우는 자리다. 작은 왕국의 왕이며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다. 교장들의 잘못은 거의 걸러지지 않는다. 교장의 눈 밖에 나면 승진도 할 수 없고 원하는 학교에 갈 수도 없다. 좁은 교직 사회에서 교장에 항명한 꼬리표는 입에서 입으로 전달돼 평생을 따라다닌다. 이런 학교에 소통의 문화가 있을 리 없다. 교사들끼리도 소통이 안 되는데 학부모와의 소통은 말해 무엇하랴.

이제 나도 퇴직을 앞두고 교장 승진 제도를 개선하지 못하고 떠나는 것이 그저 후배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현 교장 승진 제도는 평교사 교장 공모제 확대로, 궁극적으론 대학 총장처럼 선출 보직제로 바뀌어야 한다. 아동복지법 개정과 더불어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교육의 미래는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지금도 묵묵히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계신 교장, 교감 그리고 선생님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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