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100% 사용을 약속하는 ‘아르이(RE) 100’에 가입하는 세계적인 기업들이 늘어나면서 국내 수출기업에 새로운 무역장벽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에 따라 산업통상자원부가 원전까지 포함해 우리에게 불리하지 않은 ‘무탄소에너지(CF) 100’을 새로운 국제 규범으로 확산하겠다며 지난 5월17일 상공회의소에서 대한상공회의소, 기업들과 함께 무탄소에너지 포럼 출범식을 열었다. 이봉현 기자
[왜냐면] 정범진 | 한국원자력학회 회장·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불 지른 사람이 문제인가, 그 불을 끄지 못한 사람이 문제인가?
원자력발전이 경직성 전원이라서 확대하면 안 된다는 주장이 있다. 태양광과 풍력의 전력 생산이 간헐적이어서 발생하는 문제를 원자력이 막아주지 못한다는 게 이유다. 문제를 만든 것이 잘못이지, 그것을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 잘못인가? 이건 재생에너지 문제를 원전에 전가하는 것이다. 게다가 원전을 경직성 전원으로 운용하는 것은 기술적 한계가 아니라 제도의 문제다. 가장 값싼 전원인 원전의 전력을 조절하는 용도로 사용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전남에서는 태양광 발전량이 증가하면 원전 등 다른 전원의 출력을 낮춰 전력망을 안정화한다. 5배가 더 비싼 태양광 전기를 사주기 위해 원전의 전력생산을 줄이는 것이다.
또 이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알이100(RE100, 사용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대체하자는
비정부기구의
글로벌 프로젝트)이라는 맹목적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찬양하며, 재생에너지가 만든 문제를 원전의 탓으로 돌리는 등 거짓을 전파하고 있다.
이들은 한전 적자 원인이 전력요금을 제때 올리지 않아서라고 한다. 하지만 한전 적자는 원전을 줄이고 재생에너지 발전을 늘린 것이 원인이다. 킬로와트시(kWh)당 전력 정산단가(도매가격)가 2022년 기준 원자력은 52원, 액화천연가스(LNG)는 239원, 신재생에너지는 271원이었다. 한전이 이 가격에 받아 109원에 판매했기 때문에 원전이 줄고 재생에너지와 액화천연가스가 늘면 적자가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2017년 탈원전 정책이 등장했을 때, 나는 한전의 적자 또는 전기요금의 인상을 예고했었다. 반면 전기요금이 맥주 한 잔 가격밖에 오르지 않는다고 주장했던 것이 누구였나? 임기 중 전력요금을 올리지 않겠다고 주장한 것은 누구였나?
재생에너지 통계도 제멋대로 해석한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은 유럽과 미국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유럽의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은 것은 태양광이나 풍력이 아니라 수력이 많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미국은 햇볕이 좋고 바람이 많은 지역에 선택적으로
태양광과 풍력발전기를 설치했기 때문에 가격경쟁력이 있다. 캘리포니아 햇볕은 우리의 2배, 영국의 바람은 우리의 2배가 넘는다. 같은 태양광, 풍력발전기를 설치하면 미국과 영국의 전력량은 우리보다 2배에서 10배까지 나온다. 또 우리나라처럼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는 데 큰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있지 않다.
기업활동에 필요한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하자는 알이100이 기업의 수출규제로 작용할 것이라는 해묵은 위협도 다시 제기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재생에너지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여러 측면에서 무리다.
첫째, 현재 우리의 전력망에서 재생에너지가 20%를 넘으면 전력의 품질을 유지할 수 없다. 그래서 기업활동에 필요한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할 수 없다. 둘째, 기후온난화에 대처하기 위해 탄소 배출량을 줄여야 하는데 재생에너지만을 인정하겠다는 태도는 불손하다. 원자력발전으로 줄인 탄소는 기후온난화를 완화하지 않는가? 셋째, 목적과 수단이 도치됐다.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것이 목적이고 재생에너지 사용은 그 수단 중 하나일 뿐이다. 재생에너지 확대를 지상목표로 삼을 이유는 없다. 넷째, 구글이
알이100을 달성했다며 호도하지만, 구글은 2018년 원전을 포함한 시에프100(CF100, 원자력 전기 포함 무탄소 에너지 100% 사용)을 통한 무탄소 전원을 데이터센터에 공급한 결과를 보고서로 제시하고 있다. 다섯째, 영국계 비정부기구가 제시한 알이100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며, 재생에너지를 더 공급한다는 것은 국가의 경쟁력을 좀먹는 일이다. 원전을 포함하는 새로운 제도인 시에프100으로 맞서는 것이 국가적으로 옳다. 우리나라는 재생에너지가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탈원전 정책을 통해 한전은 47조원의 적자를 낳았다. 더 적자를 보는 구조를 마냥 따라가서는 안 된다.
가짜뉴스가 판을 치며, 이를 몰아내고자 하는 움직임들이 일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책임감 없는 태도로 그럴싸한 숫자와 근거들을 조합해 불을 끄지 못한 사람에게 잘못을 뒤집어씌우며 국민을 호도하는 일부 사람들이 있어 너무 안타깝다. 부디 자신의 이름이 갖는 무게감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정쟁에만 몰두하지 말고 국민에게 진실만을 이야기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