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2028 대학입시제도 개편 시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왜냐면] 이현 | (재)우리교육연구소 소장
지난 10일 교육부는 ‘2028 대학입시제도 개편 시안’을 발표했다. 핵심 내용은 수능 체제의 변화와 내신 산출방식의 변화다.
이번 개편안에서 우선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통합사회와 통합과학을 공통 수능 과목으로 만든 것이다. 겉으로는 ‘문·이과 융합’의 모양새고, 과목 제목도 ‘통합’이니 그럴듯해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개편의 숨은 목적은 수능 시험의 의미와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것에 있다.
과학 과목을 예로 들어보자. 과학 과목은 통합과학-일반선택–융합선택–진로 선택과목으로 구분된다. ‘통합과학’은 인문사회나 이공계열 등 진로와 관계없이 모든 학생이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하는 고1에서 배우는 공통과목이다. ‘일반선택 과목’인 물리, 화학, 생명과학, 지구과학은 인문사회·예체능계 학생도 알아야 할 자연과학의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내용으로 구성돼 있고, ‘이공계 진로를 선택하기 위한 기초 과학 개념’을 이해하기 위한 과목이다. ‘진로 선택과목’에는 물리, 화학, 생명과학, 지구과학의 심화 과목이 포함돼 있다. 이 과목들이 이공계 진로를 선택하는 학생을 위한 과목이다.
그런데 개편안을 보면, 이공계 진로를 선택하는 학생들이 수능에서 ‘진로 선택 수준의 과학 시험’을 보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기초 과학 개념을 위한 일반 선택 수준의 시험’을 보는 것도 아니며, ‘고1 수준의 통합과학’만 본다는 것이다. 통합사회도 마찬가지다.
이런 개편안이 가져올 첫 번째 효과는 ‘수능 시험의 무력화’다. 수능은 말 그대로 대학 수학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이다. 그런데, 고1에서 배우는 내용으로 수능을 보게 한다면, 이는 수능의 취지와 목적에도 부합하지 않을 뿐 아니라, 수능의 위상이나 영향력이 약해지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두 번째 효과는 수능의 변별력을 한층 더 약화시키는 것이다. 이미 영어 과목은 2018학년도에 절대평가로 전환된 뒤 변별 도구로서의 의미를 상실했다. 이제 사회탐구와 과학탐구마저 고1 수준의 내용으로만 수능을 보기 때문에 역시 변별도구로서의 의미를 갖기 어렵게 됐다. 결국 개편안에서 의미 있는 수능 과목은 국어와 수학만 남게 된 셈이다.
이번 개편안에서 또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내신성적은 고1~고3까지 모든 학년에 절대평가를 도입하고, 상대평가를 병기하되, 상대평가 9등급을 5등급제로 바꾼다는 점이다.
우선 상대평가를 기존 9등급에서 5등급제로 바꿔서 내신성적 1등급 비율은 종전 상위 4%에서 상위 10%로 2.5배 확대하고, 2등급은 종전에 누적 상위 11%에서 누적 상위 34%로 3배 이상 확대하도록 한다. 그런데 한 학교에서 3분의 1 이상의 학생들이 2등급 이상을 받게 되면 필연적으로 내신성적의 동점자가 많아지게 되는데, 동점자가 많다는 뜻은 곧 변별력이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고1~고3 모든 학년의 내신 성적을 절대평가로도 산출해서 상대평가 5등급과 동시에 표기하도록 하게 했다. 절대평가는 90점 이상이면 A, 80점 이상은 B, … 이런 방식으로 5단계로 성적을 표기한다. 이렇게 절대평가로 성적을 산출하면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시험문제를 쉽게 출제할 것이고, A학점을 받는 학생들은 대단히 많아질 것이다. 어떤 교사가 문제를 어렵게 내서 90점 이상 성적을 받은 학생이 적게 된다면, 학부모들로부터 ‘학생의 앞날을 가로막느냐’는 비난에 직면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신성적을 대입의 선발자료로 쓰면서 절대평가를 하면 불가피하게 ‘내신 부풀리기’기 나타나는 이유다. 결국 내신성적 상대평가를 5등급으로 듬성듬성하게 바꾸고 절대평가까지 도입하면서 의도하는 것은 ‘내신성적의 변별력을 없애서 대입에서 내신성적의 의미를 약화’시키는 데 있다.
종합하면, 이번 개편안은 ‘수능의 영향력과 변별력의 약화’와 ‘내신성적의 변별력 약화’를 목표로 하는 셈이다. 그리고 이것의 결론은 ‘대입에서 수능성적이나 내신성적으로 선발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면 무엇으로 학생을 선발하라는 것일까? 이주호 장관이 이명박 정부 시절에 주도했던 대입 정책을 되새겨보면 그 답이 분명해진다.
이명박 정부의 대입 정책은 ‘수능 영역별 만점자 1%를 나오도록 쉽게 출제하기’, ‘고교 내신 절대평가 도입하기’, ‘고교 다양화 300으로 고교 서열 체제 강화하기’, ‘입학사정관 확대하기’로 요약된다. 그리고 이러한 방향을 종합한 것이 ‘대입의 3단계 대학 자율화’ 정책이었다.
지금 이주호 장관이 주도하는 대입 정책의 방향과 목표도 결국 ‘대입의 대학 자율화’다. ‘수능성적도 참고’하고, ‘내신성적도 참고’하고, ‘교사가 써주는 주관적 서술기록도 참고’하고, ‘면접도 참고’하고, 필요하면 ‘구술면접이나 논술시험도 참고’해서 대학이 독자적인 기준과 방법으로 학생들을 ‘종합적으로 평가’해서, ‘다양한 전형 방법’으로 ‘자율적’으로 학생을 선발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대입의 대학 자율화’가 제도화되면 조민씨 사태나 박순애 전 장관·이동관 위원장 자녀의 학생부 문제에 대한 의혹과 같은 사안이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대학이 어떤 내용을 반영했는지, 얼마나 반영했는지를 공개할 이유도 없고, 따라서 외부에서는 알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학생선발은 대학 자율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안에 대해 ‘불공정하다거나 입시 부정’이라는 문제 제기도 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결국 우리나라 현실에서 ‘대입의 대학 자율화’는 수험생과 학부모의 입장에서 ‘깜깜이 대학 입시의 전면화’를 의미하며, 이것은 ‘불공정과 부정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으로 귀착할 것이다.
이해찬 전 장관이 ‘한 가지만 잘해도 대학 간다’고 선언한 이후 지난 25년 동안, 우리나라에서는 ‘객관적인 시험성적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것에 대해 ‘혐오감’을 가진 사람들이 교육정책을 주도해왔다. 시험성적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것은 후진적이고 비교육적이라는 것이다. 또한, 시험성적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것은 창의성을 저해하고 인성을 반영할 수도 없으며, ‘미래 역량을 키울 수도 없고, 따라서 미래인재를 양성’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학습 부담이 증가하고 사교육비도 증가하며, 공교육의 정상화를 훼손한다는 것이 이들이 논리다. 그리고 이번 개편안은 이러한 ‘시험성적 혐오론자’들의 주장을 등에 업고 있다.
그런데 이제 ‘시험성적에 대한 혐오감’을 가진 교육정책 입안자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시험성적이 아니라 학생이 제출한 서류와 면접 평가방식으로 대입 선발을 확대해온 지난 25년 동안 우리나라 고등학교 현장은 교육적으로 훌륭하게 변화했나? 창의력이 뛰어나고 인성이 좋은 학생을 양성해왔나? 미래 역량이 길러지고, 미래 인재가 대학에 입학해왔나? 수험생들의 학습 부담은 경감됐나? 사교육비는 줄어들었나? 공교육은 정상화됐나?
만일 이 질문들에 대해서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다면, ‘낭만적 발상’으로 대한민국 교육을 황폐화하고, 대학 입시를 끊임없는 불공정과 부정의 시비에 휘말리게 해온 무책임한 시도가 이제 더 이상 용납돼서는 안 된다. ‘낭만적 발상’이 정책으로 현실화되면 낭만적인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참담한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이번 개편안의 뒤에 있는 의도인 ‘대입의 대학 자율화’는 결과적으로 고교 서열화를 고착화하고, 대입에서의 불의와 불공정을 제도화하는 것으로 귀결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