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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자살률, 무차별범죄 급증…자살·타살 본질 다르지 않아

등록 2023-11-22 18:43수정 2023-11-23 02:40

지난 8월4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서현역 일대에 통제선이 설치돼 있다. 전날 저녁 같은 장소에서 흉기 난동 사건으로 14명이 다쳤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지난 8월4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서현역 일대에 통제선이 설치돼 있다. 전날 저녁 같은 장소에서 흉기 난동 사건으로 14명이 다쳤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왜냐면] 서원희 | 행정학 박사

올해 들어 3월 경기 용인시 죽전역으로 향하던 전동차 안에서, 7월 서울 관악구 신림역 근처 골목에서, 8월 경기 성남시 서현역 부근에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이상 동기 범죄’(무차별 범죄)가 잇달아 발생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한국 사회가 구조적으로 사회계층의 사다리를 올라갈 수 없을뿐더러 평범한 정상성마저 획득하기 어려워 청년층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러한 정상성 실패에 더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비대면 사회에서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한 것도 이상 동기 범죄가 늘어난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특히 사회·경제적 진출의 기회와 폭이 줄어들면서 사회적 취약계층으로 내몰린 청년 문제도 이상 동기 범죄가 늘어난 원인이라 볼 수 있다.

정상성 좌절이 심각해지면 발생할 수 있는 대표적인 사회적 징후는 자살과 폭력, 강간 및 타살이다. 자살과 타살은 그 사회가 정한 규범으로 욕망을 충족하기 어려울 때, 즉 정상적인 방법으로 갈등을 해결할 수 없는 일탈행위라는 점에서는 같다. 또한 자살과 타살은 순전히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개인이 사회와 상호작용한 결과라는 점에서도 같다.

보건복지부 통계를 보면, 한국의 자살자는 2022년 기준 인구 10만명당 25.2명으로 2021년 기준 10만명당 26명과 견줘 소폭 낮아졌지만, 표준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은 22.6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평균인 10.6명의 2배를 상회하는 수치로 압도적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에 반해 한국의 타살률은 비교적 안전한 사회라고 평가받고 있다. 2023년 한국에서 일어난 잇단 이상 동기 범죄에 대해 영국의 비비시(BBC) 등 주요 외신은 한국의 ‘묻지마’(Mudjima)를 원어 그대로 소개하면서 한국이 2022년 살인율은 세계 최저 수준을 기록했지만 최근 묻지마식 흉기 난동 사건으로 안전의 위험성이 높아졌다고 보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한국의 살인율은 인구 10만명당 1.3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평균인 2.6명의 절반 수준이며 미국의 5분의 1에 불과할 정도로 안전한 사회로 평하고 있다.

사회학자인 에밀 뒤르켐은 아노미 시기에는 자살률과 타살률이 똑같이 높아진다고 주장했다. 이때 아노미 시기란 사회 규범이 영향력을 미치지 않거나, 그 기준이 모호해 개인이 어디에 소속해 있는지 불분명한 경우를 말한다. 특히 경기 침체나 정치·사회적 급격기에 아노미가 발생하는데 코로나19 같은 팬데믹으로 인한 정치·경제적 큰 변화를 겪은 뒤에도 발생한다. 뒤르켐은 생전에 1882년 파리 증권거래소 파산 이후 자살률 연평균 증가율이 2%에서 7%로 급증한 사례를 제시하면서 파산과 실업, 경제적 붕괴는 자살률을 크게 증가시킨다고 주장했다. 한국도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당시 실업률과 파산율이 급격히 올라가면서 자살률이 구제금융 이전 10만명당 14.1명에서 1998년 19.9명으로 급격하게 상승했는데, 이도 같은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다.

그렇다면 뒤르켐의 아노미 명제에 따를 때, 현재 한국 사회의 높은 자살률과 낮은 타살률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한국의 이상 동기 범죄를 포함한 낮은 범죄율로 한국을 안전한 사회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뒤르켐은 자신에 대한 폭력인 자살과 타인에 대한 폭력은 동전의 양면이라고 주장했다. 개인의 경제적 붕괴와 사회적 좌절은 자살로 표출할 수 있지만, 사회적 불만이나 상대적 박탈감 등으로 인한 적개심으로 타살로도 표출할 수 있다. 즉, 폭력의 대상은 다르나 그 본질은 같기에 자살과 타살은 상호 전환되고 연동될 수 있다.

한국 사회의 범죄율은 그 수치로만은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과 비교해서 안전한 국가다. 그러나 자살률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것은 개인의 내적 분노와 좌절이 3자로 표출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는 불안전한 국가라 할 수 있다. 뒤르켐의 아노미 이론에 따르면 자살률과 타살률의 근본 원인은 다른 것이 아니다. 개인의 경제적 붕괴와 사회 안전망의 부재, 공감과 연대가 단절된 사회는 자살과 타살 위험이 모두 큰 사회다. 자살과 타살에 대한 통계와 정부 대책은 다르지만, 한 사회의 사회구조적, 제도적 모순을 나타낸다는 점에서 같다.

우리는 단순히 2023년 잇따른 이상 동기 범죄 등 범죄율 수치에만 주목할 것이 아니라 사회적 징후로서 자살률과 타살률의 원인인 한국 사회의 구조적, 제도적 모순을 심층적으로 통찰해 그 대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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