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한화진 | 환경부 장관
일부 과학자들은 토양을 ‘지구의 살아있는 피부’라고 부른다. 토양은 지구 표면의 얇고 손상되기 쉬운 부분이지만, 인류와 지구 생태계의 건강을 위해 대체 불가능한 역할을 한다는 의미다. 실제로 육상 생태계를 구성하는 생명체의 40%가 땅속에 살고, 전 세계 인구가 소비하는
식량의 95%가 토양에서 생산된다.
그동안 우리 사회의 도시화, 산업화, 산림 개발 등은 토양의 건강성에 악영향을 끼쳤다. 2015년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전 세계 토양의 30%가 훼손됐고 지난 20년간 지구 표층토 5억t이 유실됐다고 평가한 바 있다. 건강한 토양 0.5㎝가 생성되는데 무려 100년이 걸린다고 한다. 이 속도보다 최고 100배나 빠르게 토양이 훼손되는 상황에서 토양을 보전하기 위한 노력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우리 정부도 토양오염으로부터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토양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1995년 ‘토양환경보전법’을 제정한 뒤 오염 토양 정화 절차를 확립하고, 토양 정화·조사 시장도 성장하며 토양 관리 체계가 발전해 왔다. 충남 서천의 옛 장항제련소 인근은 이러한 체계에 따라 정부가 주도해 토양오염을 조사하고 정화를 실시한 대표적 부지다. 일제강점기부터 수십 년간 제련소를 운영하면서 카드뮴, 비소 등 중금속으로 오염된 곳이었으나
2009~2020년 토양정화를 실시해 인근 장항 송림숲은 현재 연간 100만여 명의 방문객이 찾는 관광명소가 됐다.
이미 오염된 토양의 정화와 복원에는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는 만큼 토양오염을 조기에 발견하고 선제적으로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에 환경부는 매년 산업단지, 철도 부지, 노후 주유소 등 오염이 우려되는 지역을 대상으로 환경 조사를 하고, 토양오염관리대상시설을 목록화해 관리하고 있다. 또한 토양오염의 예방, 진단, 정화 등 단계별 기술 개발을 통해 국내 토양 분야 기술을 선진국 수준으로 발전시켜 현장에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보다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현행 체계를 더욱 합리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과거보다 인체 위해성 평가 기법이 발전하고, 우리나라 국토에 분포하는 자연 기원 물질의 농도를 파악한 만큼 이를 고려한 오염 토양의 판정, 정화 방법 등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먼저 환경부는 객관적 조사와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 인체와 생태계에 위해가 없는 범위 안에서 정화 기준을 합리적으로 조정할 계획이다. 또한 토양오염물질의 제거나 저감을 원칙으로 하는 현행 토양 정화 방법도 개선할 것이다. 장기적으로 선진국과 같이 오염 부지의 토양오염물질이 인체와 환경에 미치는 위해를 평가해 정화의 범위와 방법을 결정하는 위해도 관리 체계로 전환을 추진하고자 한다.
유엔(UN)은 토양의 중요성을 공유하고, 토양 보전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을 촉구하고자 2013년 제68차 정기총회에서 12월5일을 ‘세계 토양의 날’로 지정했다. 우리나라도 이에 동참해 2015년부터 매년 토양의 날을 기념하고 있다. 9회째를 맞이한 올해는 ‘건강한 토양 미래를 싹틔우다’라는 주제로 미래세대를 위해 건강한 토양 보전의 의미를 되새기고자 한다. 토양오염으로 외면받던 장항제련소 인근이 이제는 많은 사람이 찾는 힐링 공간으로 변모한 것처럼 건강하게 변화한 토양은 더 이상 묻어놔야 할 과거가 아닌 설레는 미래를 우리에게 선물해 준다. ‘세계 토양의 날’을 맞아 우리 모두 건강한 토양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