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서윤미 |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 마약류정보분석팀·전 교사
수능을 마친 고3 학생들은 현재 인생에서 가장 애매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 등교는 하지만, 교과수업은 하지 않는다. 성인과 청소년 사이 어딘가를 서성이며 담임선생님과 부모님의 잔소리를 더 이상 듣지 않는다. 학교는 이 시기에 특별 프로그램을 짜서 운영하며, 오전만이라도 학생들이 학교의 테두리 안에 있기를 바라지만, 수능을 마친 고3 학생들의 해방감과 거기에 따를 법한 일탈은 사회적 문제로 대두한다. 교육부는 연말까지 ‘학생 안전 특별 기간’을 운영하며 마약과 도박 등 일탈 행위를 예방하기 위한 교육도 강화한다고 한다. 올해 제공하는 프로그램은 171개로 전년(80개)보다 2배 이상 증가했다.
전직이 고등학교 교사였던 나는 먼저 교육부 누리집에 들어가 전년 대비 2배 이상 증가했다는 청소년 마약 예방 관련 온·오프라인 교육 자료들을 살펴봤다. 5분 남짓한 동영상부터 마약 예방 교육 전문가 강의까지 자료 대부분이 ‘마약이 왜 나쁜가’, ‘마약의 어떤 성분이 우리의 뇌를 망치는가’ 등 마약의 심각성을 과학적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이 영상들을 제대로 보는 아이들이 몇이나 될까. 밀린 잠을 자거나, 아니면 주변 아이들과 수다를 떠는 아이들이 눈에 선하다. 충격적인 마약 문제를 이렇게 말랑말랑하게 학문적으로 접근해야 하나 의문이 든다.
다음으로 마약 예방 교육에 가장 권위 있다는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에서 실시하는 오프라인 교육에 대해 찾아봤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소속 전문강사는 327명이며, 전국에서 활동 중이라는 기사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전국의 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원하는 때에 대면교육이 가능할 지는 미지수다.
교육부는 10월30일 ‘제2차 학생건강증진 기본계획’(2024~2028년)을 발표하면서 학교가 ‘사이버 및 약물·마약중독 예방 교육’을 연간 10시간씩 하도록 정한 고시를 개정한다고 밝혔다. 전체 10시간 가운데 ‘마약류를 포함한 약물중독 예방 교육’ 시간을 유·초등학교는 5시간, 중학교는 6시간, 고등학교는 7시간 이상으로 명시했다. 강사들을 지금부터 양성하기 시작한다 해도, 언제부터 모든 유·초·중등학교에서 전문 강사를 초빙해 대면 교육을 실시할 수 있을지 요원하다.
검찰청이 발표하는 ‘마약류 월별 동향’을 보면, 올해 9월까지 검거한 청소년 마약사범은 지난해 같은 기간의 1.5배를 이미 넘어섰다. 전문가들은 마약류 동향의 특징으로 청소년의 폭발적 증가를 꼽았고 예방 교육만이 답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마약 예방 교육 사업 예산은 45억 원이 늘었으나, 사업운영에 필요한 추가인력 인건비는 반영하지 않아 실효성 있는 운영이 어려워 보인다. 예산만 증액하면 해결할 수 있는 일인가. 따지고 보면 우리보다 훨씬 큰 예산을 집행하는 미국에서도 마약 문제는 참 어려워 보인다.
마약류 오남용 교육을 의무화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청소년 마약 예방 교육의 현실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교육 내용은 뇌리에 깊이 남도록 충격적이고 강한 인상을 줘야 한다. 40대 이상의 마약 중독자들이 감소 추세인 건 그들이 사망했기 때문임을 사실 그대로 알려줘야 한다. 과학적 근거의 나열보다는 마약을 시작함으로써 인생이 망가지는 경험을 서늘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보건복지부의 마약류 사용자 실태조사 결과, 중독자 중 마약류를 사용하기 이전부터 우울, 불안 등의 정신과 문제로 치료 상담을 받은 사람이 26.7%에 달한다고 한다. 청소년의 정신과적 문제에 대해 쉬쉬하는 분위기가 강한 우리나라에서 자신이 겪는 어려움을 가정에서 솔직히 털어놓고 의논할 수 있는 청소년은 얼마나 될까. 우리나라 어린이·청소년의 주관적 행복지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며 성인의 자살률은 1위인 점을 볼 때, 약물의 유혹에 얼마나 쉽게 빠질 수 있는 환경인지 알 수 있다. 경쟁과 비교, 허세로 가득한 소셜미디어(SNS)를 보면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행한 사람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환경이 돼야 하고, 무엇보다 가정·사회와의 유대감이 어린 청소년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예산 증액을 통한 마약 예방 교육도 중요하지만, 정서적 위기에서 청소년을 보호해 주지 못한다면 수능이 끝난 뒤의 풍경은 항상 비슷할 것이고, 그에 대응하는 정부 부처들의 대책도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수능시험 보느라, 힘들었지”하며 어깨를 토닥여 줘야 할 때다. 12년 동안 정말 고생이 많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