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2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2023년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왜냐면] 이윤배 | 조선대 컴퓨터공학과 명예교수
부존자원이 별로 없는 우리나라가 정글의 법칙만이 존재하는 21세기 무한경쟁 시대에 선진국이나 강대국으로 거듭날 수 있는 유일한 지름길은, 우수 과학 두뇌를 집중 육성하고 과감한 투자를 통해 첨단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수 인재 확보와 첨단 과학기술 개발이 곧 ‘국가 경쟁력’이다. 우리나라가 1950~1960년대 보릿고개를 슬기롭게 이겨내고 1인당 국내총생산(GDP) 3만 달러 시대를 열게 된 것은 열악한 연구 환경에서도 묵묵히 산업을 부흥시키고 자동차와 배를 만들고 반도체를 개발한 이공계 출신 과학기술인들의 피와 땀과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공계 출신 과학기술인들은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알게 모르게 홀대받아 온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런 까닭에 지금 이공계 고급 두뇌들은 고국을 등지고 물설고 낯선 해외로 떠나고 있다. 지난해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에서 발표한 ‘두뇌 유출지수’를 보면 우리나라는 10점 만점에 4점으로, 주요 64개 조사대상국 가운데 43위에 그쳤다. 두뇌 유출지수는 0∼10의 척도로 표시하는데 0에 가까울수록 두뇌 유출이 많다는 의미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공계 기피 현상 또한 심각한 상황이다. 특히 국내 이공계 인재들의 의대 진학 열풍이
불면서 의대가 이공계 인재들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고 있다. 앞으로 의대 정원이 늘어난다면 의대 쏠림 현상은 더욱더 심화할 것으로 우려한다. 이공계를 전공하는 것이 밝은 미래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 팽배해 있고, 과학 분야의 석박사 과정을 밟는다고 해도 사회적 신분 보장과 경제적 안정을 담보할 수 없다고 학생들이 판단하기 때문이다.
21세기 지식기반 정보 사회에서 고급 과학인력은 국가 산업을 지탱할 원동력이자 기본적인 국가 자산이다. 따라서 정부는 더 늦기 전에 과학기술인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이를 위해 과학기술 정책을 결정하고 수행하는 부서들을 통폐합해 단일 전담기구를 만들고 책임과 권한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특히 누가 먼저 첨단 과학기술을 개발하느냐에 따라 경제 전쟁의 승패가 판가름 나는 냉혹한 국제 현실을 직시하고 첨단 과학기술 개발에 집중투자와 더불어 과학기술인을 우대하고 존경하는 사회적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 그리고 고위 공직의 일정 부분을 과학기술인에게 할당하는 법적, 제도적 장치도 필요하다.
그러나 현실은 대단히 비관적이다. 지난 6월28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나눠먹기식, 갈라먹기식 연구개발은 제로베이스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라고 한 윤석열 대통령의 한마디에 2024년 연구개발 예산이 16.6%나 삭감됐기 때문이다. 삭감액은 5조2천억 원이나 된다. 연구개발 예산이 이처럼 대폭 삭감된 것은 1991년 이후 33년 만에 처음 있는 일로서,
그동안 연구개발 예산은 연평균 10.9% 증액해 왔다.
반면 대통령의 올해 해외 순방 예산은 애초 249억 원을 편성했으나 중간에 이런저런 이유로 329억 원을 증액해 578억 원이 됐다. 이는 원래 예산의 232%로 두 배를 초과한 금액이다. “외교가 민생이고, 외교가 일자리 창출”이라는 대통령실 주장대로 필요하다면 예산을 증액해 쓸 수도 있다. 그리고 해외 순방 외교를 통해
단기간에 투자 유치, 국가 안보 협력 등 나름의
가시적인 성과 또한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연구개발은 도깨비방망이처럼 뚝딱하면 성과나 결과물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꾸준한 투자와 함께 조급증을 버리고 인내하며 기다려야 한다. 정부는 나무만 보는 어리석음에서 하루빨리 벗어나 숲도 보는 혜안을 가져야 한다. 투자를 소홀히 해 첨단기술개발에 뒤처지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