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을 보내며
선생님,
입추 지나 처서로 달려가는 귀뚜라미 울음소리 처연합니다. 어느덧 누렇게 물들기 시작한 들판 위에 먼 바다에서 건너온 가을바람 소슬하군요. 손잡으려 하면 언제나 가없는, 저 남쪽 바다 끝 섬처럼 떠 있는 당신, 그리운 사람들은 항상 멀리 있고 엎드려 절하며 생의 사표로 삼고 싶은 스승들은 하나둘씩 광활한 우주 속으로 사라집니다.
선생님,
그해 여름, 서산남부농협 신축공사장에는 아침부터 뜨거운 햇볕이 섭씨 30도를 오르내렸는데요, 새참으로 나온 컵라면과 소주잔을 앞에 놓고 철근팀과 목수팀들이 한바탕 붙은 적이 있었습니다. 예덕리 장씨와 홍천리 김씨가 멱살까지 붙잡고 험악하게 싸운 이유가 다름 아닌 김대중은 빨갱이다, 아니다였어요. 사소한 말다툼으로 시작한 언쟁이 결국 예덕리 장씨 아저씨가 에이 씨발놈의 세상! 하면서 망치자루를 던지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끝이 나고 말았습니다. 저는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한쪽 구석에 쪼그려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어이, 자네는 음료수도 해태 걸로만 먹는다메, 묻더군요. 할 수 있다면 3m가 넘는 장빠루로 세상 천장을 피터지게 한번 뚫고 싶었습니다.
밀물이 들면 썰물이 빠져나가듯 우리네 인생이란 한번 들어오면 언젠가는 반드시 돌아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사투리는 매웠습니다. 사투리는 무서웠습니다. 우리가 걸어온 숱한 거리에서 공사 현장에서 포장마차에서 술집에서 구멍가게에서 항구에서 터미널에서 역전에서 시장바닥에서 이룰 악물고 싸웠습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 자리에 오른 선생님을 간첩이다 아니다, 빨갱이다 아니다로 끊임없이 물어뜯고 피를 흘렸습니다. 항상 쪽수에서 밀린 가난한 사투리들은 숨을 곳이 없었어요. 말없이 눈물을 찬밥에 말아 거칠게 씹어 삼키곤 했지요. 세상 가장 낮은 그늘에서 세상 가장 높은 그늘까지 선생님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지만, 상처와 갈등 속에 언제나 따뜻한 그늘은 없는 법입니다. 선생님은 그 뚜렷한 그늘 때문에 영광과 좌절을 한꺼번에 겪어오셨습니다. 죽음과 삶이라는 반찬을 한 밥상에 받으면서 견뎌내셨어요. 모두들 병들었지만 아무도 아파하지 않는 시절들이었지요.
선생님, 오랜 세월 아픔이었고 절망이었고 고통이었고 부끄러움이었고 울음이었고 한이었고 증오였고 끝끝내 치유할 수 없는 상처처럼 보였던, 그러나 너무나 큰 사랑이었던, 뜨거운 사투리는 동서화합의 가교로, 남북통일의 디딤돌로 우리들 가슴속에 튼튼하게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이 도도한 역사의 흐름을 거역할 수 없습니다. 이제 더 이상 사투리 때문에 사람이 사람을 잡아 가두고 고문하고 죽이는 세월은 그만두어야 할 때가 온 것 같아요. 그 모든 죄를 선생님이 대속하여 피 흘리고 가셨으니 말입니다. 십자가는 그것 하나만으로 족합니다. 그만하면 됐습니다. 저기, 장마 끝나고 쨍하니 빛나는 햇볕 아래 목수들, 다시 집을 짓기 시작합니다. 억센 근육질 어깨에 땀방울 눈물처럼 흘러내리는군요. 후제, 우리 목수팀 통일 세상에서 선생님 다시 만나면 홍탁삼합에다 막걸리 넘치게 받아놓고 잔치 한판 벌이자구요. 춤 한번 덩실덩실 춰 보자구요. 유용주/시인
선생님, 오랜 세월 아픔이었고 절망이었고 고통이었고 부끄러움이었고 울음이었고 한이었고 증오였고 끝끝내 치유할 수 없는 상처처럼 보였던, 그러나 너무나 큰 사랑이었던, 뜨거운 사투리는 동서화합의 가교로, 남북통일의 디딤돌로 우리들 가슴속에 튼튼하게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이 도도한 역사의 흐름을 거역할 수 없습니다. 이제 더 이상 사투리 때문에 사람이 사람을 잡아 가두고 고문하고 죽이는 세월은 그만두어야 할 때가 온 것 같아요. 그 모든 죄를 선생님이 대속하여 피 흘리고 가셨으니 말입니다. 십자가는 그것 하나만으로 족합니다. 그만하면 됐습니다. 저기, 장마 끝나고 쨍하니 빛나는 햇볕 아래 목수들, 다시 집을 짓기 시작합니다. 억센 근육질 어깨에 땀방울 눈물처럼 흘러내리는군요. 후제, 우리 목수팀 통일 세상에서 선생님 다시 만나면 홍탁삼합에다 막걸리 넘치게 받아놓고 잔치 한판 벌이자구요. 춤 한번 덩실덩실 춰 보자구요. 유용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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