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부산대의 한 교수가 목숨을 버리며 ‘총장 직선제’ 폐지 반대를 주장하였다. 참담하고 비통한 사태를 마주하고, 나는 지금은 모든 국립대학들이 총장 직선제를 폐지하고 받아들인 이른바 ‘총장 공모제’의 현실을,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라도, 적어 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근무하는 강원대는 2011년 9월 (당시) 교과부로부터 ‘구조개혁 중점 추진 국립대학’으로 지정받았다. 그리고 그 오명과 불이익에서 벗어나는 조건으로 총장 직선제를 폐지하고 2012년 5월에 전국 국립대학들 가운데 최초로 이른바 ‘총장 공모제’ 방식으로 총장 후보자를 선정하였다. 당시 나는 교무처장으로 관련 규정을 만드는 위원회와 총장후보자 선정 절차를 진행한 추천관리단의 업무를 행정적으로 지원하였다. 그 과정에서 ‘총장 공모제’ 방식의 결함과 폐해를 생생하게 보았다.
총장 공모제는, ‘교육공무원임용령’이란 법령에 따라 50인 이내의 위원(1/4 이상은 학외인사)으로 구성한 ‘대학의장임용추천위원회’에서 총장 후보자를 선정하여 정부에 임명을 요청하는 방식이다. 선의로 추정한다면 ‘공모제’ 도입을 강압한 이명박 정부(당시 교과부 장관 이주호)는 미국 주립대학들의 ‘총장초빙위원회’ 제도를 모방했을 것이다. 대학 안팎의 관계자들과 주정부를 대리하는 인사들이 총장 후보자들에 대해 ‘청문’ 절차를 진행하고 적임자를 선정하는 방식이다. 이런 제도는 적합한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조건이 있어야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의 대학과 사회의 상황은 그런 조건과는 거리가 멀다.
총장 공모제는 ‘총장임용추천위원회’에 총장 후보자 선정의 모든 권한을 부여한다. 이 위원회는 아무런 견제나 감시도 받지 않는다. 문제는 이 ‘총장임용추천위원회’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에 있다. 상식적으로 추천위원이라면, 응모한 사람들 가운데 최적의 총장 후보자를 선정할 수 있는 ‘전문성’, 사사로운 이해관계를 넘어설 수 있는 ‘사명감’과 ‘책임감’, 그리고 대학의 구성원들과 외부의 관계자들을 대신할 수 있는 ‘대표성’을 갖춘 사람들이어야 할 것이다. 특히 위원회가 정당성을 확보하고 모든 관련자들의 승복을 얻으려면 위원의 선임에 ‘공정성’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앞의 요건들이 명확하게 확인할 수 없는 것들인 반면, ‘공정성’의 요건은 절차적인 것이며 또한 그것의 충족 여부를 형식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고려 때문에 대다수 대학들은 ‘무작위 추첨’ 방식으로 위원을 선임하고 있다.(내가 알아본 것으로는 한 대학만이 ‘전임교원을 대상으로 다수의 추천을 받은 자’를 선임한다.) 무작위 추첨 방식은 ‘추첨’이 선임의 주체이기 때문에 공정성 시비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방식은 ‘아무나’ 선임하기 때문에 추천위원에게 필요한 다른 능력과 자질은 결코 담아낼 수 없는 결함을 가지고 있다.
지난번 강원대의 총장 후보 선정 상황은 그 결함을 숨김없이 보여준다. 먼저, 무작위로 선임된 교수들 가운데 절반가량이 참여를 거절하였다. 그래서 추첨을 여러 차례 반복해야 했다. 반면 총장 후보 응모자들과 연줄이 있는 교수들은 ‘추첨’에 당첨되면 결코 거절하는 일이 없었다. 또 응모자들은 위원으로 선임될 가능성이 있는 ‘외부 인사’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방식으로 접촉하고 있었다. 결국 위원회에는 특정의 응모자들을 지지하는 위원들이 상당수 참여하였다. 그러므로 형식적으로는 공정하였지만 실질적으로는 불공정하게 구성되었다. 그런 위원회가 최적의 총장 후보자를 선정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오히려 그런 위원회가 선정한 총장을 ‘복권 총장’으로 부르는 것이 더 솔직하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위원회가 1차 심의, 2차 심의를 진행하면서 탈락한 응모자들을 지지했던 위원들을 대상으로 ‘회유’와 ‘담합’이라고 의심할 수 있는 일들이 나타났다. 당시 총장 후보자로 선정된 응모자의 득표 순위는 1차에서 5명 중 3위, 2차에서 3명 중 2위, 3차에서 2명 중 1위였다. 이런 점을 우려하여, 추천위원은 총장 임기 개시 뒤 2년간 교무위원으로 임명할 수 없도록 정하였지만, 교무위원 이외의 보직을 임명하거나 2년이 지난 뒤 임명하는 등 비켜갈 길은 많이 있다. 간단히, 책임감이나 사명감이 없는 위원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위원회에서는 담합에 능한 대리인을 둔 응모자를 총장 후보자로 선정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담합 총장’이라는 오명도 덧씌워졌다.
‘총장임용추천위원회’ 구성은 총장 공모제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도자나 대표자들이 도덕적 권위를 갖추지 못한 한국의 사회문화적 조건에서는, 대학 안팎에서 수긍하고 승복할 수 있는 추천위원 선임 방안을 만들어내기 어렵다. 그래서 추천위원의 선임의 책임을 ‘운’에 떠넘기는 무작위 추첨 방식에 의지한다. 무작위로 뽑힌 추천위원들은 자신들이 수행할 임무와 역할을 외면하고, 단지 ‘선거인’으로, 아무도 그들에게 투표 권한을 위임하지 않은 선거인으로 기능한다. 게다가 상당수 위원들은 자신의 사적 이해관계를 계산하여 권한을 행사한다. 결국, 총장 공모제는 대학 안팎에서 아무런 근거도 없고 아무런 책임도 없는 소수 사람들이 사적 이익에 따라 총장 후보자를 선정하는 최악의 제도가 되었다.
총장 직선제가 폐해가 많다고 하지만 민주성, 대표성, 정당성, 책임성 등의 장점이 있는 반면, 총장 공모제는 적어도 한국의 대학에서는 아무런 장점도 찾을 수 없는 허무한 제도라고 해야 한다. 대학을 망치겠다고 작정하지 않았다면 이런 제도를 고집할 이유는 없다. 덧붙여 ‘복권 총장’, ‘담합 총장’을 낳을 수밖에 없는 이런 터무니없는 제도를 ‘국립대 선진화 방안’이라는 엉뚱한 이름으로 강압한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지금 전국의 국립대학들에서 그런 총장이 주도하여 벌어지는 퇴행적인 일들에 대해서도 책임져야 한다.
이기홍 강원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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