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라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사무국장 민주주의라는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 한국의 민주주의도 마찬가지다. 독재와 불의에 항거하던 사람들 중 많은 이가 희생되었다. 희생자에 대한 의학적 소견이 필요할 때 의사는 역사의 광장으로 호출된다. 자의건 타의건 그러한 순간을 맞닥뜨린 의사는 당연히 정치적 부담을 느낀다. 그럼에도 객관적 사실을 말할 때 역사는 전진한다. 박종철 열사의 물고문을 폭로한 중앙대병원 내과의사, 이한열 열사가 사망하자 다른 학생들이 더 모일 때까지 스크럼을 짜고 시신을 지켰던 신촌세브란스병원의 전공의들, 강경대 열사의 사인을 부검 없이 밝혀낸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의 의사들이 그 예이다. 백남기 농민의 사망 2일 전인 9월23일, 가족들은 인의협에 부검이 필요없다는 의견서를 부탁한다. 주치의 백선하 교수가 일반적인 소견서조차 발급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9월25일 오전에 인의협 회원 3명이 신경외과, 신경과, 내과 전문의번호를 걸고 ‘사인은 명확하며 부검은 필요없다’는 의견서를 발표한다. 그리고 그날 오후 백남기 농민이 돌아가셨고 법원은 검찰의 부검 영장을 기각한다. 하지만 서울대병원은 사인이 병사라는 사망진단서를 발급해 주었고 이를 근거로 검찰은 부검영장을 재청구한다. 그날 밤 나는 외인사를 병사라고 둔갑시킨 사망진단서는 불의에 항거해온 민주시민에 대한 모독으로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글을 썼다. 26일 인의협은 사망진단서의 5가지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수정을 요구하는 의견서를 발표한다. 이어 서울의대 재학생 102명, 서울의대 졸업생 365명, 전국의 15개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 802명이 연대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하지만 서울대병원, 서울대 의과대학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는 사망진단서가 작성지침과 다르게 작성되었으나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이후 서울대병원에 대한 2번의 국정감사(10월11일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10월14일 보건복지위원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백선하 교수와 서창석 서울대병원장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백선하 교수는 이렇게 주장하는 것 같았다. “내가 수술하고 치료한 의사이다. 환자의 상태에 대해 누가 나보다 잘 안단 말인가?” 매우 권위적인 발상과 태도이다. 그동안 일개 환자에게는 그러한 태도가 통했는지 모르겠지만 이번 사건은 백 교수의 말대로 정치적인 사건이다. 그러므로 이 사망진단서는 죽어가는 대한민국 농민들에 대한 허위진단서이고 경찰의 범죄를 은폐하는 행위이다. 서울대병원은 경찰의 폭력에 의해 사망한 국민을 병사라고 해도 동료 의사들과 의대생들이 침묵할 것이라 생각한 것 같다. 하지만 그 사망진단서의 오류를 지적하고 엉터리 진단서임을 선언하는 순간 그 뒤에 가려진 의사와 경찰, 서울대병원과 권력과의 관계가 드러나고 거기서 파열구를 만들 수 있었다. 최순실 사태로 박근혜 정부의 추악한 본질과 무능력이 드러났고 이제 더 이상의 국정운영은 불가능하다. 검찰은 지난 28일 백남기 농민에 대한 부검영장 재청구를 포기했다. 그러나 싸움은 이제 시작이다. 가해자인 경찰이 부검할 수 있게 협조해온 서울대병원에 대한 수사도 철저히 하여 이 사건을 은폐하고 싶었던 권력자들과 의사의 관계를 밝혀야 한다. 다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복원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를 맞아 의사의 사회적 역할과 본질적 임무를 되돌아본다. 백남기 어르신은 의료계에 큰 교훈과 희망을 남겨주고 가셨다. 의사가 진실을 말할 때 역사의 전진 속도가 빨라진다. 의사는 대중 일반의 이익을 위해 복무할 때 진정한 권력과 지위를 얻을 수 있다. 최고로 부패한 ‘최고의 병원’에 용기있게 잘못을 지적하는 수많은 의대생, 의사들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아직 희망은 살아 있다. 그것을 얼마나 모아내고 확산시키느냐. 이 시대 의사들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역사적 과제인 것 같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사무국장 민주주의라는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 한국의 민주주의도 마찬가지다. 독재와 불의에 항거하던 사람들 중 많은 이가 희생되었다. 희생자에 대한 의학적 소견이 필요할 때 의사는 역사의 광장으로 호출된다. 자의건 타의건 그러한 순간을 맞닥뜨린 의사는 당연히 정치적 부담을 느낀다. 그럼에도 객관적 사실을 말할 때 역사는 전진한다. 박종철 열사의 물고문을 폭로한 중앙대병원 내과의사, 이한열 열사가 사망하자 다른 학생들이 더 모일 때까지 스크럼을 짜고 시신을 지켰던 신촌세브란스병원의 전공의들, 강경대 열사의 사인을 부검 없이 밝혀낸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의 의사들이 그 예이다. 백남기 농민의 사망 2일 전인 9월23일, 가족들은 인의협에 부검이 필요없다는 의견서를 부탁한다. 주치의 백선하 교수가 일반적인 소견서조차 발급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9월25일 오전에 인의협 회원 3명이 신경외과, 신경과, 내과 전문의번호를 걸고 ‘사인은 명확하며 부검은 필요없다’는 의견서를 발표한다. 그리고 그날 오후 백남기 농민이 돌아가셨고 법원은 검찰의 부검 영장을 기각한다. 하지만 서울대병원은 사인이 병사라는 사망진단서를 발급해 주었고 이를 근거로 검찰은 부검영장을 재청구한다. 그날 밤 나는 외인사를 병사라고 둔갑시킨 사망진단서는 불의에 항거해온 민주시민에 대한 모독으로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글을 썼다. 26일 인의협은 사망진단서의 5가지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수정을 요구하는 의견서를 발표한다. 이어 서울의대 재학생 102명, 서울의대 졸업생 365명, 전국의 15개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 802명이 연대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하지만 서울대병원, 서울대 의과대학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는 사망진단서가 작성지침과 다르게 작성되었으나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이후 서울대병원에 대한 2번의 국정감사(10월11일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10월14일 보건복지위원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백선하 교수와 서창석 서울대병원장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백선하 교수는 이렇게 주장하는 것 같았다. “내가 수술하고 치료한 의사이다. 환자의 상태에 대해 누가 나보다 잘 안단 말인가?” 매우 권위적인 발상과 태도이다. 그동안 일개 환자에게는 그러한 태도가 통했는지 모르겠지만 이번 사건은 백 교수의 말대로 정치적인 사건이다. 그러므로 이 사망진단서는 죽어가는 대한민국 농민들에 대한 허위진단서이고 경찰의 범죄를 은폐하는 행위이다. 서울대병원은 경찰의 폭력에 의해 사망한 국민을 병사라고 해도 동료 의사들과 의대생들이 침묵할 것이라 생각한 것 같다. 하지만 그 사망진단서의 오류를 지적하고 엉터리 진단서임을 선언하는 순간 그 뒤에 가려진 의사와 경찰, 서울대병원과 권력과의 관계가 드러나고 거기서 파열구를 만들 수 있었다. 최순실 사태로 박근혜 정부의 추악한 본질과 무능력이 드러났고 이제 더 이상의 국정운영은 불가능하다. 검찰은 지난 28일 백남기 농민에 대한 부검영장 재청구를 포기했다. 그러나 싸움은 이제 시작이다. 가해자인 경찰이 부검할 수 있게 협조해온 서울대병원에 대한 수사도 철저히 하여 이 사건을 은폐하고 싶었던 권력자들과 의사의 관계를 밝혀야 한다. 다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복원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를 맞아 의사의 사회적 역할과 본질적 임무를 되돌아본다. 백남기 어르신은 의료계에 큰 교훈과 희망을 남겨주고 가셨다. 의사가 진실을 말할 때 역사의 전진 속도가 빨라진다. 의사는 대중 일반의 이익을 위해 복무할 때 진정한 권력과 지위를 얻을 수 있다. 최고로 부패한 ‘최고의 병원’에 용기있게 잘못을 지적하는 수많은 의대생, 의사들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아직 희망은 살아 있다. 그것을 얼마나 모아내고 확산시키느냐. 이 시대 의사들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역사적 과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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