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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김영란법 국정농단사태로 유명무실해지나 / 김수인

등록 2016-12-26 18:28수정 2016-12-26 19:24

김수인
언론인

9월28일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이 시행됐을 때 국가 청렴도는 크게 높아질 것으로 기대됐다. 많은 국민들은 경기 위축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 법의 성공적인 정착을 기원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부패 정도가 최상위권인 우리나라가 부정부패만 없어도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0.6% 높아진다는 분석도 있기 때문이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 공동 수상자인 올리버 하트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모든 경제행위가 계약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계약 과정을 투명하게 할수록 사회적 효용이 올라간다”고 설파했다. 하지만 한달 후 불어닥친 ‘최순실의 국정농단’은 이 법을 집어삼킬 분위기다. 시행 초기에는 ‘3(식사)-5(선물)-10만원(경조사비)’의 한계를 지키려고 공무원, 언론인, 사립교원, 기업인들은 전전긍긍했다. 그래서 전국민적으로 ‘엔(N)분의 1’이라는 ‘각자 내기’의 바람직한 접대문화가 싹틔우는 것 같았다.

그러나 최순실, 차은택 등이 국정을 어지럽히며 수백억원을 아무렇지 않게 챙긴 것을 보고 국민들은 “이러려고 김영란법을 악착같이 지키나?”라는 회의와 허탈감에 빠져들고 있다. 이러면 이 법을 몰래 어기는 불법, 편법이 판칠 수 있다.

얼마 전, 이 법의 직접 대상자(사립교원, 공직자, 언론인)인 ㄱ과 그의 직무관련자 등 네 명이 저녁 식사를 했는데 식대가 20만원이 넘었다. 식사 후 ㄱ은 각자 내는 결제방식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요즘, 누가 이런 걸 지켜~”라며 천연덕스럽게 공짜 저녁을 먹었다. 좀 어이가 없어서 주위에 물어보니 “시행 초기에는 다들 눈치를 봤지만 한달 정도 지나고서는 예전처럼 접대 쪽이 액수에 관계없이 결제한다”고 말한다.

김영란법 대상자들이 골프를 엄격히 자제하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골프 비용을 각자 계산한 뒤 비용만큼 현금을 건네는 편법이 이뤄진다고 한다. 서울 진양꽃상가 업체에 따르면, 보내는 이의 이름과 직함이 확연히 드러나는 경조 화환은 5만원짜리도 ‘수령 사절’이 많아 매출이 급감, 휴폐업을 심각하게 검토중이란다. 화훼업 위축이 얼마나 심각하면,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화훼단지를 방문해 내년 봄 보완대책 강구를 발표했을까?

내년 경제성장이 2%대로 떨어질 건 확실한데, 김영란법까지 유명무실해지면 엎친 데 덮친 격이 된다. 이 법이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정부의 의지가 확고해야 하지만 국민 각자의 ‘준법정신’이 더 중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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