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총선을 한 달여 앞둔 12일 경남 창원시 의창구 선거관리위원회 직원들이 사전투표와 선거일 투표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투표소 장비들을 점검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성범 ㅣ 독일 브레멘대학교 법학과 박사과정
우리는 신체의 감각을 통해 인식할 수 없더라도 많은 것들의 존재를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특히 법적 제도와 내용은 감각적 인식에 얽매이지 않고 공동체의 필요에 따라 관념적으로 구성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헌법상 제도적 의미를 갖는 정당 역시 마찬가지이다. 정당을 창당할 때면 참 잘 쓴 글씨의 당명이 새겨진 커다란 나무 현판을 소중하게 건물 벽에 걸고 박수치는 모습이 뉴스에 나오기도 하고, 당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커다란 깃발을 휘두르며 그 정치적 의지의 크기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감각적인 인식을 뛰어넘어 정당은 관념적으로 존재하며 자신의 권리 및 의무를 갖는다. 이는 어떤 회사 자체가 그 회사의 멋들어진 건물이나 회사원들로만 인식되지 않는 관념적 실체인 것과 같다.
보고 만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보니 우리 머릿속에서 다양한 정당의 형태가 구성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선거를 앞두고 논의되고 있는 위성정당은 정당의 관념성에 참 잘 부합하는 것처럼 보인다. 관념적인 것은 무한히 분할되고 또 합쳐질 수 있으니까. 비록 선거 후에 원래의 당으로 통합될지라도 현재 어떻게든 관념적으로 기존의 정당과 다르게 나뉘어 존재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또 정당설립의 자유는 헌법상 자유로서 최대한 보장되어야 하니까 정당법상으로도 정당의 등록은 형식적 요건만 잘 갖추어지면 된다고 한다. 이에 근거하여 선거관리위원회도 위성정당의 등록을 받아주었다.
정당등록의 형식적 요건, 즉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사무소, 일정 수의 당원들 등이 곧 정당인 것은 아니다. 정당의 등록에서 형식적 요건만을 요구하는 것은 실질적 심사를 하게 될 경우 정당설립의 자유가 정치적 이념에 따라 부당하게 침해될 수 있기 때문일 뿐이지, 이를 통해 그 형식적인 것들이 곧 정당이라는 말을 도출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즉 형식적으로 다르더라도 정당은 관념적으로 존재하는 만큼 관념적으로 그 동일성이 판단된다. 당명, 사무소, 당원 수가 아무리 다르게 등록되더라도, 같은 이념과 정책을 추구하며 선거 후에 통합할 의도를 갖고 있는 경우라면 동일한 정당으로 취급되어야 한다. 이는 명시적으로 정당법에 쓰여 있지 않더라도 정당의 관념적 성질로부터 자연스럽게 나오는 내용이다. 왜냐면 아무리 관념적 존재의 구성이 무궁무진하더라도 그들 사이 같고 다름은 존재하기 때문이다. 동일한 것이 존재한다는 이유로 등록신청을 받지 못하는 것과 정치적 이념의 옳고 그름을 따져 등록을 해주지 않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일 뿐이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 볼 때 정당등록 규정의 함의를 오해하고 위성정당의 등록을 받아준 선거관리위원회의 결정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관념상 무한대로 증식할 것만 같은 위성정당에 대해 정당들이 각자의 의석수 예측만을 놓고 논의하는 것을 보며, 문득 내가 투표하고 싶은 그 정당의 ‘실체’를 직접 보거나 만져서 감각적으로 확실하게 인식할 수 있다면 어떨지 생각해본다. 정당의 관념적 성질과 정당법 규정 모두를 자기들 눈앞의 이익을 위해 제멋대로 이해하고 해석하여 그저 의석수만 불리겠다는 정치적 욕심들 때문에 어느덧 사라져버린 진짜 정당을 찾고 싶어서이다.
국회 진출을 목표로 하는 모든 정당들에 말하고 싶다. 선거관리위원회가 위성정당을 강제한 것도 아니니, 각자의 명분이 어떻든 간에 하루빨리 모여서, 민의를 왜곡하는 위성정당의 형태로 선거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합의를 하라고. 각 정당 본연의 모습을 명확히 보여줄 때만 국민들은 보이는 대로 진실된 한 표를 던질 수 있다. 지금으로서는 추후 그렇게 합의되지 않을 모습이 눈앞에 너무 선명하게 보여 아쉬울 따름이지만, 그래도 아직 시간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