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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탈북자의 정치활동과 미국의 북한 레짐 체인지

등록 2020-04-13 18:26수정 2020-04-14 16:04

박한식 미 조지아대 명예교수. <한겨레> 자료사진
박한식 미 조지아대 명예교수. <한겨레> 자료사진
박한식

미 조지아대 명예교수

15일 총선을 앞두고 열기가 뜨겁다. 미국에서 50년 넘게 살면서 정치학을 연구한 나로서는 한국의 정치가 늘 관심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번 총선 현장은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지금까지 본 총선과 전혀 다른 양상이 눈에 띄었기 때문인데, ‘탈북자의 적극적 정치활동’이 그것이다.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의 생활여건은 절반 이상이 극빈자일 정도로 어렵다고 한다. 탈북자의 자살률이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인 자살률의 3배에 이른다고 하니 그들의 어려운 사정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탈북자가 어려운 여건을 극복하는 방법 중 하나는 방송에 출연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들이 방송에 나가서 하는 얘기는 대부분 북한을 ‘악마화’하는 내용으로 채워진다. 나는 북한을 50회 이상 방문하면서 북한을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삶을 살았다. 그런 내가 탈북자들이 방송에서 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황당할 때가 많다. 사실이 아닌 내용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탈북자 출신 북한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북한의 정치를 평론하는 내용도 크게 다를 게 없었다. 그나마 최근 유튜브 방송 <왈가왈북>(언론협동조합 담쟁이 왈가왈북 https://www.youtube.com/channel/UCy_KoWo9QxRElSiR_I7akZA)이 채널에이(A)의 ‘이만갑’과 티브이(TV)조선의 ‘모란봉클럽’에서 반복하는 북한 왜곡 보도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고발하며 ‘팩트체크’와 ‘감시’에 나선 것은 높이 평가한다.

특히 나는 2010년 사망해 국립대전현충원에 묻힌 황장엽의 묘비를 보면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곳엔 ‘북한 민주화 위원장 황장엽의 묘’라고 적혀 있다. 나는 북한에서 황장엽과 8년 넘게 만나면서 수많은 학술적 대화를 나누었다. 오랜 세월 만난 황장엽의 ‘영혼’ 속에는 북한 민주화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황장엽은 오히려 미국식 민주주의에 대한 거부감이 컸다. 그런 황장엽에게 ‘북한 민주화 위원장’이라고 칭한 것은 북한 레짐 체인지에 대한 환상 때문이다.

황장엽처럼 북한 레짐 체인지를 실현하겠다며 정치세력화를 도모하는 탈북자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서울 강남갑 국회의원에 출마한 태영호(태구민)는 다음과 같은 출마선언을 했다. “제가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된다면 북한 체제와 정권 유지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북한 내의 엘리트들 … 특히 자유를 갈망하고 있는 북한의 선량한 주민들 모두 희망을 넘어 확신을 가질 것이며, … 대한민국에는 제가 북한 인권과 북핵 문제의 증인이었듯이 북한에는 자유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의 증거가 될 것(이다).” 또한 탈북자들이 창당한 남북통일당은 “북한에 지하당을 조직해서 김정은 체제를 무너뜨리겠다”고 선언했다. 북한을 악마시하는 감정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태영호나 남북통일당의 주장이 ‘복음’처럼 들릴 것이다.

어떤 정치체제가 붕괴하려면 반드시 피지배자가 그 체제에 대한 심리적 지지를 철회하는 ‘정당성 위기’에 봉착해야만 한다. 그러나 북한이 70년 이상 유지되었다는 사실은 정당성 위기를 겪은 적이 없다는 사실을 명시적으로 말해준다. 설사 탈북자 한두명이 한국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고 북한 인민과 엘리트가 동요하겠는가? 또한 북한에 지하당을 만들어서 북한 체제를 붕괴시키겠다는 주장도 실현되기 어렵다. 북한은 정당정치를 하는 나라가 아니기 때문이다. 북한 노동당은 정당이 아니라 최고 의사결정기관이다.

그럼에도 일부 탈북자들이 정치판에 뛰어드는 까닭은 무엇인가? 북한 레짐 체인지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는 미국과 한국의 지원과 기대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다. 위키리크스의 폭로를 보면, 국가정보원은 1997~2007년 생산한 탈북자 관련 기록 9180건을 미국에 넘겼다. 또 미국은 탈북자단체 등에 자금을 지원하면서 북한 내부 정보를 빼내는 노력을 멈추지 않고 있다.

미국은 북한을 전세계에 ‘악의 축’으로 선전하면서 북한 체제 전복을 끊임없이 획책하는 북한 레짐 체인지 정책을 한국 국민에게 철저히 세뇌시키고 있다. 하지만 탈북자를 수단으로 한 북한 레짐 체인지 전략은 오직 한반도 분단을 고착시키는 데 기여할 뿐이다. 한국의 분단이 강고하게 지속돼야만 미국은 천문학적 금액의 무기를 계속 팔아먹을 수 있다. 그리고 그 대가는 온전히 우리 자신과 우리 후손이 치러야만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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