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종 ㅣ 서울시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우리 사회의 생활 물류를 감당하고 있는 택배산업은 1962년 한국미창(현 씨제이대한통운)을 시작으로 58년의 역사를 거치면서 2019년도 기준 6조3303억원대의 시장 규모로 급성장했다. 연간 택배 물량은 27억9천만개로 국민 1인당 연 53.8회 이용한 셈이다. 올해는 비대면(언택트) 소비 증가로 택배 물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이면에는 어둡고 우울한 그림자가 진하게 드리우고 있다. 올해 들어서만 택배노동자 13명이 목숨을 잃으며 무거운 불편함과 참을 수 없는 아픔이 우리를 슬프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태의 원인은 특수고용노동자인 택배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에 있다. 이들은 개인사업자라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못한다. 2018년 조사 결과에선 하루 평균 12.7시간씩 월평균 25.6일 근무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등 고강도의 노동에 시달리고 있는데, 올해 노동 강도는 택배 물량 폭증으로 한층 세졌음은 물론이다.
최근 노동계·종교계·시민단체 등 각계 대표들로 구성된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는 기자회견을 열고 “택배노동자들의 과로사는 ‘구조적 타살’”이라며 “그 핵심적 요인은 재벌 택배사들이 택배노동자들에게 강요하는 분류작업에 있다”고 했다. 그만큼 택배노동자들은 무임금 밤샘 분류작업, 심야 및 새벽 배송 등 당일 배송 강요, 총알배송 및 로켓배송 종용 등 살인적 노동 강도에 혹사당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들은 1일 평균 2만5천보를 넘게 걷는 격무에 산재보험 적용 제외, 음성적 관행인 권리금 수수 및 입사 과정에서의 보증금 지급을 감당한다. 배달 플랫폼 회사 증가로 단가인하 경쟁이 계속돼 수수료가 줄고, 아프면 일감이 빠져버리고, 휴가를 내려면 대신 배송할 사람을 자비로 구해야 하며, 그만두려 해도 후임자를 못 구하면 그만둘 수조차 없는 택배사의 놀부 짓 등 근무환경은 열악하기 짝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일 택배노동자들의 과로사 문제에 대한 “특별대책을 서둘러달라”고 지시한 바 있고,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고용노동부와 함께 대책을 마련해서 11월 중에 발표하겠다”고 밝혔으며, 생활물류 서비스산업 발전법 제정과 산재보험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지만 더딘 감이 없지 않아 보인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의 노동과 시장에 대한 이해 증진, 열악한 근무환경 개선, 택배사의 갑질 근절이라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선행되어야 한다.
택배노동인력 충원, 평균 근로시간 단축, 주 5일제 근무 실시, 무임금 밤샘 분류작업 철폐, 심야 및 새벽 배송 금지, 택배 없는 날 확대, 근무시간 제한 표준계약서 작성, 수수료 단가 인상, 폭염·한파·우중수당 지급, 산재보험 적용, 권리금·보증금 지급 관행 철폐, 영업소별 건강 관리자 지정, 정기 건강검진 실시, 영업소 응급·방역 물품 구비 등이 제도화되도록 관련 법령 제정 및 개정 작업의 조기 추진으로 택배노동자 과로사 근절 대책을 서둘러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