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태 ㅣ 통일부 통일교육원 교수
4월 지방자치단체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다양한 공약이 언급되고 있다. 특히 부산시장 선거공약으로 가덕도 신공항과 함께 한일 해저터널이 화두에 올랐다. 단순히 일회성으로 그치는 선거용 프로젝트가 아니라, 미래 한반도의 지리경제학적 경쟁력을 좌우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사안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여야의 정치적 이익을 떠나서 가장 적합한 미래 전략을 택해야 하는 순간이다.
한반도의 경쟁력은 대륙과 해양에 모두 연결 가능하다는 점이다. 대륙으로 접근하거나 해양으로 진출하기에 용이한 전략적 요충지이다. 하지만 남북 분단으로 인해 이런 장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지금은 ‘섬 아닌 섬’과 같은 신세로 전락했다. 이것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단절된 네트워크를 다시 연결하는 것이다. 대륙과 해양을 잇는 접점이자 교두보로서 한반도의 특성을 되살려야 한다.
부산의 가장 큰 잠재력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한반도 최대의 항구도시로서 해양 네트워크와 육상 네트워크가 만나는 물류·교통의 거점이라는 점이다. 북한을 통과하는 철도가 연결되면 부산은 한반도 남단의 항구도시가 아니라, 유라시아 대륙의 관문 도시로 새롭게 태어나게 된다. 동남아 크루즈 관광객들이 부산으로 와서 케이티엑스(KTX)로 갈아타고 서울과 평양을 거쳐 베이징, 모스크바, 유럽의 도시들로 여행하게 될 것이다. 일본의 컨테이너를 실은 선박이 부산항으로 와서 한반도 종단철도를 통해 유라시아 대륙으로 물류가 이동하게 될 것이다.
한일 해저터널의 의미는 한국과 일본의 입장에서 볼 때 매우 큰 차이가 있다. 일본은 1930년대부터 대동아공영권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해저터널을 검토해왔다. 우리 입장에선 단지 일본과 연결되는 것에 불과하지만, 일본은 유라시아 대륙 경제와 직접 연결되는 육상 네트워크를 확보한다는 엄청난 전략적 의미가 있다. 한국과의 연결이 최종 목적이 아니라는 뜻이다. 만약 한일 해저터널이 건설되면 일본의 물류와 여객은 부산항을 거치지 않고 한반도를 그냥 통과해서 대륙으로 향할 수도 있다. 한반도가 단순히 통과 동선의 역할을 할 것인지, 아니면 동북아 물류·교통의 허브로 새롭게 태어날 것인지 전략적인 판단을 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대륙철도는 물론이고 해저터널까지 모두 연결되는 것은 한반도의 네트워크가 확장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무엇을 먼저 추진해야 할지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아울러 특정 프로젝트가 누구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지도 면밀하게 따져봐야 한다.
만약 한일 해저터널이 일본의 이익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면 우리가 먼저 서두를 필요는 없다. 일본이 건설 공사비용을 부담해서 진행하도록 그냥 놔두면 된다. 대신 우리는 유라시아 대륙과 연결되는 남북철도 구축에 먼저 투자해야 한다. 부산이 발전할 수 있는 방안은 한일 해저터널보다는 대륙철도의 연결이다. 이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막대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생각한다면 북한의 철도 현대화 사업에 우리가 직접 투자한다 해도 전혀 아깝지 않다.
한·중·일 3국이 함께 동북아 고속철도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프로젝트를 구상해보면 어떨까. 철도는 비상업적 공공인프라이기 때문에 국제사회와 함께 대북 경제제재의 예외 조치로 적용받는 것을 추진해볼 수 있다. 각국이 얻게 될 효용가치를 따져볼 때 신의주~평양 구간에는 중국이 투자하고, 서울~평양 구간은 한국, 그리고 부산~규슈 해저터널 구간은 일본이 부담하는 방안도 나쁘지 않다. 한·중·일 네트워크의 중간에 자리 잡은 한반도의 지리경제학적 경쟁력을 되살리면서, 동시에 남북한의 공동번영과 동북아 평화를 실현하는 ‘일석삼조’의 전략적 지혜를 모색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