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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천안함 어뢰설’은 당연해졌는가 / 이승헌

등록 2021-03-24 21:08수정 2021-04-12 14:15

이승헌

미국 버지니아대학 물리학과 교수

최근에 한 자성체 물질에 대해서 논문 하나를 썼다. 그 물질의 물리적 상태에 관한 논문이었다. 기존의 연구들이 그 상태가 A라고 주장을 해왔다. A가 물리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너무 전문적이니 생략한다. 다만, 어떤 자성체에서 A 상태를 발견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그래서 데이터가 비슷하게만 나와도 A 상태라고 주장하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 그런데 그 연구들의 실험은 ‘간접 증거’에 해당하는 데이터들을 얻는 방식이었다. 게다가 어떤 데이터들은 A 상태가 아님을 보여주는 듯했다. 반해 나의 실험 방식인 중성자충돌 실험은 물질 상태에 관한 ‘직접 증거’를 얻을 수 있다. 그래서 그 물질에 중성자충돌 실험을 한 결과 그 물질의 상태는 A가 아니었고, 다른 상태였다. 그 상태를 B라 하자. B는 A처럼 흥미롭지는 않다. 그러나 직접적인 데이터는 B 상태라고 말해주는데 어찌하겠는가. 결과를 정리하여 한 저널에 투고하였다. 이 논문이 발표가 되면, 학계는 이 자성체의 상태가 A가 아니고 B라고 인정할 것이다. 기존의 간접 증거 데이터들은 B 상태에 기반을 두고 재해석될 것이다. 당연하다. 직접 증거가 결정적이다.

천안함 침몰의 진실에 대한 논쟁도 비슷하다. 2010년 천안함은 한-미 대잠수함 훈련 도중에 침몰하였다. 그 뒤 2개월의 짧은 조사 기간을 끝으로, 중간선거를 코앞에 두고 이명박 정부의 합동조사단은 북한 잠수함이 쏜 어뢰가 폭발하여 천안함이 침몰하였다고 주장하였다. 북한 어뢰설이다. 북한과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고, 70여년 전의 한국전쟁이 아직 종전이 되지 않은 현재, 어떤 사람들에게는 매우 자극적이고 매력적인 설이다.

자, 그 어뢰설이 맞는지를 과학적으로 살펴보자. 북한 어뢰설이 맞으려면, 당연히 보였어야 할 직접 증거들이 있다. 예를 들면, 어뢰폭발 때 생기는 거대한 물기둥과 시신, 생존 장병들의 고막 손상 등이다. 그런데 그러한 직접 증거들은 전무했다. 대신 천안함 절단면 바로 옆에 있던 형광등은 온전했다. 합조단이 내세운 어뢰설의 증거들은 모두 간접 증거들이었다. 그중 가장 핵심이라고 주장했던 것은 녹슨 ‘1번’ 어뢰 파편과 하얀 분말가루에서 뽑아낸 과학 데이터들이었다. 그 데이터들은 내 분야여서 그 당시에 살펴보았는데, 결론은 그 데이터의 일부가 조작되었다는 것이었다.

물리학에서 적용되는 과학적 방법론을 여기 적용해보자. 어뢰설이 맞다면 당연히 나와야 할 직접 증거들이 없으니 어뢰설은 바로 파기되어야 한다. 그 직접 증거들의 부재와 상충되지 않는 다른 가설들을 살펴보아야 한다. 어뢰설에 대한 간접 증거들은, 다른 가설들을 기반으로 설명이 가능한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침몰의 진짜 원인이 무엇이든, 당연히 있어야 할 직접 증거가 전무한 어뢰설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뢰설은 거짓이다.

다시, 나의 과학연구로 돌아와보자. 그 자성체의 B 상태에 대한 직접 증거를 보여주는 논문이 발표된 이후에도 그 물질의 상태가 A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학계에서 바보 취급을 받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한국에서는 천안함 어뢰 침몰설이 여전하고 더 당연해진 듯하다. 직접 증거도 없이 간접 증거라는 한두가지 데이터를 붙잡고 어뢰설을 주야장천 주장한다. 전말이 전도되어 있다. 일반 사람들이나 수구 언론도 아닌 공정과 진보를 표방하는 언론인들까지. 코끼리의 다리를 붙잡고 나무라고 부르짖는 형국이다. 왜 그럴까. 한국 사회의 과학적 소양의 결핍인가, 아니면 분단이 빚은 우스운 풍경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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