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시 아이치현미술관. ‘표현의 부자유전-그 이후’ 기획전에 전시된 ‘평화의 소녀상’ 옆에 놓인 의자에 일본 어린이가 앉아 있다. 나고야/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김소연ㅣ도쿄 특파원
“반일 전시회를 야메로!(그만둬)”, “위안부상 야메로!”
일본 도쿄 신주쿠 주택가에 있는 전시장 세션하우스가든 주변이 지난달 6일부터 소란스럽기 시작했다. 낯선 사람들이 나타나 골목을 돌아다니며 큰 소리로 구호를 외쳤다. 어떤 날은 차량과 확성기까지 동원됐다. 이들은 6월25일부터 7월4일까지 예정된 ‘표현의 부자유전’ 전시회를 막기 위해 나선 우익단체 사람들이다. 이번 전시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평화의 소녀상’ 등이 포함되면서 계획적으로 움직인 것으로 보인다. 협박이 계속되자, 갤러리 쪽이 백기를 들었다. 동네 주민들에게 더 이상 폐를 끼칠 수 없다며 이미 약속한 전시 장소를 빌려줄 수 없다고 통보했다. 전시를 기획한 일본 시민단체 활동가 등으로 구성된 도쿄실행위원회는 다른 장소를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구할 수 없었다. 전시는 일단 연기됐다.
오사카에서 진행될 ‘표현의 부자유전’도 진통을 겪고 있다. 7월16일부터 18일까지 사흘간 오사카부립 노동센터 ‘엘·오사카’에서 전시가 예정됐는데, 최근 장소 대여가 취소됐다. 우익들이 전화와 차량을 이용해 항의를 시작하자, “관람객 안전에 지장이 있다”는 이유로 전시 자체를 막아버린 것이다.
일본에선 2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2019년 나고야에서 진행된 국제 예술행사 아이치 트리엔날레 기획전에 ‘평화의 소녀상’이 출품됐고, 우익들의 협박으로 전시 사흘 만에 중단되기도 했다. 소녀상만 수난을 겪은 것은 아니다. 지난 5월엔 우익들이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 <늑대를 찾아서>의 상영을 중단하라며 일본 영화관 2곳을 위협하는 일도 있었다. 이 영화는 1970년대 중반 일제 전범기업을 상대로 폭파 사건을 일으킨 일본인들의 40여년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때도 차량을 동원해 하루 종일 ‘야메로’를 외쳤다. 영화관 1곳은 결국 상영을 취소했다.
일본에서 헌법 제21조에 명시된 ‘표현의 자유’가 무너지는 모습은 마치 수학공식처럼 일정한 패턴이 있다. 우익단체들의 협박이 시작되고, 전시장을 빌려준 곳은 민폐와 안전을 걱정해 스스로 포기한다. <거리로 나온 넷우익>이라는 책을 쓴 저널리스트 야스다 고이치는 최근 주간지 <아에라>(AERA)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익들의 (전시 방해) 행위는 ‘반일’을 키워드로 한 인종 차별주의, 배외주의다.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일본 사회의 취약성을 (우익들이) 찌르고 있다.” 우익들의 ‘야메로’가 공포스러운 것은 집요한 협박 때문만은 아니다. 야스다의 말처럼 일본군 ‘위안부’ 등을 ‘반일’로 낙인찍어 민주주의 국가라면 당연히 보장해야 할 ‘표현의 자유’를 무시해도 괜찮다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더 위험하다. 일본 정부부터 외국에서 소녀상이 세워지거나 전시만 돼도 외교력을 총동원해 막고 있다.
이런 일본이 문제가 있다며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오카모토 유카 ‘표현의 부자유전’ 도쿄실행위원은 기자회견에서 “폭력적인 공격으로 표현의 자유를 빼앗으려는 행위에 강력히 항의한다”며 “장소를 찾는 대로 전시회를 개최할 것”이라고 밝혔다. 오사카 전시 실행위원들도 대여를 취소한 ‘엘·오사카’를 상대로 집행정지 등 법적 대응에 나섰다.
이들을 응원하는 시민들도 있다. 도쿄 전시는 사전에 티켓 600장이 팔렸다. 응원의 메시지도 도착하고 있다. “경비 자원봉사가 필요하면 저도 갈 수 있어요. 인권을 도외시하는 사람들의 괴롭힘이 있겠지만, 여기서 후퇴하면 그들이 원하는 대로 검열 사회가 됩니다. 힘내세요.” 일본에서 조속히 ‘평화의 소녀상’ 전시를 볼 수 있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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