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비행사 찰스 린드버그는 1927년 홀로 33시간 동안 비행기를 몰아 뉴욕에서 파리로 날아갔다. 최초의 대서양 횡단 비행이었다. 호주 출신의 버트 힝클러는 1931년 험악한 날씨를 극복하고 남대서양을 거쳐가는 두번째 대서양 횡단 비행에 성공해 많은 상을 받았다. 그러나 힝클러보다는 세번째로 성공한 미국의 아멜리아 이어하트가 더 많이 기억된다. ‘여성 최초 대서양 횡단 비행사’로서. 마케팅 연구에서는 이를 ‘선도자의 법칙’이라고 한다.
1961년 옛 소련의 유리 가가린이 우주 비행에 성공했을 때 미국은 이 선도자의 법칙을 떠올리고 탄식했다. 만회하기 위해 ‘인류 최초의
달 착륙’에 온힘을 다했다. 결국 많은 희생을 딛고 1969년 7월 아폴로 11호를 달에 착륙시켰다. 닐 암스트롱 선장이 달에 첫 발자국을 남겼다. 여기에도 2등이 있었다. 암스트롱보다 20분 뒤에 내린 착륙선 이글호 조종사 버즈 올드린이다. 1990년대 초 삼성은 이런 역사 속 인물들을 거론하며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습니다’라는 시리즈 광고를 내보냈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성토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인간 사회의 속성이 대체로 그렇다.
우승 문턱에서 탈락한 2등에겐 비탄이 있다. 미국 코넬대학교 심리학과 연구팀은 1992년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의 표정을 연구해, 은메달리스트들은 동메달을 딴 사람보다 행복도가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을 밝혀냈다. 입상의 기쁨을 우승 경쟁에서 탈락한 아쉬움이 크게 갉아먹었다는 이야기다. 이를 보면, 어떤 시험에 불합격한 사람에게 ‘점수차가 아슬아슬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은 위로가 되기보다 속상함만 더 키울 것이다.
정부와 여당이 2차 추경에서 소득 하위 80%에 1인당 25만원씩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예산안이 국회로 넘어간 뒤에도 민주당 안에서 지급 대상을 놓고 논란이 이어졌다. 80%는 주고 81%에겐 안주냐는 지적 때문이다. 모두에게 주지 않는한 아슬아슬한 탈락자 문제를 해결할 길은 없다. 그런데 지급 대상을 늘리자니 절실하게 지원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몫이 줄어드는 문제가 또 기다린다. “지급 대상이 아닌 분은 고소득자라는 증거입니다.” 그런 말로는 위로가 안되는 걸까?
정남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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