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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 거는 한겨레] 김의겸의 감수성 / 정환봉

등록 2021-07-14 04:59수정 2021-10-15 10:39

이선호씨 산재사망사고 진상규명 촉구 기자회견이 지난 5월6일 오전 경기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 신컨테이너터미널 운영동 앞에서 열리고 있다. 평택/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이선호씨 산재사망사고 진상규명 촉구 기자회견이 지난 5월6일 오전 경기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 신컨테이너터미널 운영동 앞에서 열리고 있다. 평택/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정환봉 소통데스크

“어차피 인공지능(AI) 시대엔 우리 대부분이 무능력으로 분류될 거야.” 능력주의를 소재로 친구와 수다를 떨다 튀어나온 말이 명치를 때렸다. 이미 5년 전 알파고가 바둑으로 이세돌 9단을 이긴 마당에 능력을 다툴 상대를 인간으로 한정하는 것은 게으른 생각이었다. 반성은 찰나. 내 머리는 어느새 남은 정년과 인공지능의 발달 속도를 계산하고 있었다. 물론 내가 그 계산을 할 수 있을 리 없다. 하지만 생계에 대한 열망은 쉽게 꺼지지 않았다. 기어이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것을 찾아냈다. 감수성.

당신은 기관사다. 브레이크는 고장 났다. 진행 방향 철로엔 5명, 임시 철로엔 1명이 일하고 있다. 핸들을 꺾을 것인가?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학 교수의 질문이다. 인공지능은 망설임 없이 결정을 내릴 터다. 하지만 인간은 망설일 수밖에 없다. 1과 5 중 무엇이 큰 수인지 몰라서가 아니다. 곧 사라질 삶의 무게를 가늠하는 감수성이 뻔한 계산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빠른 것만이 경전인 시대에 감수성은 속도를 늦추는 방해물이다. 하지만 누군가 내게 <한겨레>의 장점을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서슴없이 ‘감수성을 가진 기자들’이라고 답할 것이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한강 의대생 사망 사건을 두고 <한겨레>는 망설였다. 언론이 각종 ‘의혹’을 앞다퉈 보도하고 수많은 명탐정이 유튜브에서 ‘범인은 바로’를 외쳤다. 하지만 <한겨레>는 그 따라잡기 어려운 추리의 속도가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 수 있다는 감수성을 놓지 않았다. 평택항에서 산재로 세상을 떠난 젊은 노동자를 쉽게 잊지 않았고, 코로나19 이후 생의 의지를 단념하고 있는 2030 여성을 비롯한 많은 이들의 절규를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이런 감수성들이 만들어가는 알고리즘이 결국 인간의 저널리즘을 지킬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다. 그리고 그 일을 <한겨레>가 가장 잘할 수 있을 것이란 희망도 품고 있다.

기대는 때로 엉뚱한 곳에서 무너지곤 한다. <한겨레> 출신인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은 12일 한 라디오 방송에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 쪽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기자들의 경찰 사칭 사건을 언급하며 “세월이 흘렀으니 기준과 잣대가 달라졌고 시대 변화에 맞춰 볼 때 잘못한 건 맞다”면서도 “나이가 든 기자 출신에겐 사실 굉장히 흔한 일”이라고 말했다. “제 나이 또래에서는 한두번 안 해본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이튿날 기자회견에서 그는 ‘정치인인 윤 전 총장이 사건을 법률로 해결하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가 발언의 핵심이었으며 기자의 행위에 대해 말한 부분은 불찰’이라는 취지로 해명했다. 그 말의 진의를 의심하진 않는다. 다만 그의 감수성은 의심한다. 단순한 말실수에 불과했다면 “경찰이 한 것처럼 믿게 하려고 경찰서 경비 전화를 사용”하는 방법까지 무용담처럼 부연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적어도 내가 지난 10년 동안 <한겨레>에서 함께 일했던 기자들은 그의 말과 달랐다. 후배 기자들은 경찰을 사칭하는 빠르고 쉬운 방법 대신 밤 서리 맞으며 쓴 긴 편지로 누군가를 설득했다. 흔한 사건 기사 한 문장에도 곡해가 있을까 다섯번씩 다시 써 무엇이 가장 적당한지 물어왔다. 취재 윤리를 어겨서라도 기삿거리를 가져오라고 채근하는 선배를 만난 적도 없다. 경비 전화를 사용하는 ‘스킬’을 몰랐거나 투철한 준법정신 때문은 아니다. ‘올바르게 취재해 제대로 쓰고 있나’, ‘내 기사가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않을까’, ‘이 기사는 공익을 위한 것인가’…. 오늘을 사는 기자들의 치열한 감수성 안에는 목적만 중요했던 시절의 무용담이 들어설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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