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와 국내정치의 관계를 두고 상반된 의견이 있다. 먼저 외교와 국내정치를 엄격하게 구분해, 외교가 국내정치에 휘둘리면 안 된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외교가 국내정치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되고, 외교의 독자성과 전문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와 달리 외교와 국내정치는 연계되고 상호작용한다는 주장도 있다. 1988년 로버트 퍼트넘 미국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가 발표한 〈외교와 국내정치: 양면게임(two-level games)의 논리〉 논문이 대표적이다. 퍼트넘 교수는 국제정치와 국내정치를 엄격하게 구분해온 기존 학계 관행을 비판하며, ‘양면게임’ 이론을 제시했다. 외교는 국가 간 협상이란 외부 게임과 국내정치란 내부 게임이 두 차원에서 동시에 진행된다는 내용이다. 정부가 대외 협상에서 합의하려는 내용이 국내에서 국회와 이익집단에도 동의(국내 비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 이론에서는 국가 간 협상 결과는 그 성패와 관계없이 해당 국가의 자발적인 선택으로 여겼다. 양면게임 이론은 국가 간 협상에서 양국 협상 당사자끼리 합의를 했더라도 국내 비준을 못 받으면 협상이 깨지는 경우를 상정한다. ‘비자발적 배신’이다. 이런 사례는 한-일 관계뿐만 아니라 2000년대 한-미 투자협정과 스크린 쿼터 협상 사례, 1990년대 중반 쌀 시장 개방과 관련한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양면게임 이론의 핵심 개념은 ‘윈셋’(win-set)이다. 퍼트넘 교수는 윈셋을 ‘주어진 상황에서 국내 비준을 얻을 수 있는 모든 합의의 집합’이라고 설명했다. 양쪽의 윈셋이 겹치는 부분이 합의 가능한 영역이므로 윈셋이 겹치는 부분이 클수록 협상 타결 가능성이 커진다. 양면게임 이론 틀로 보면, 한-일 관계가 안 풀리는 이유는 과거사 등 현안에서 겹치는 윈셋의 범위가 아주 좁고 ‘가해자 일본’과의 합의에 대한 국내 비준이 어렵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일 관계는 양국이 이견을 좁혔더라도 돌발 악재가 발생하면 원점으로 돌아가곤 한다. 최근에도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추진되던 한-일 정상회담이 소마 히로히사 주한일본대사관 총괄공사의 막말 파문이 겹치면서 무산됐다.
양면게임 이론으로 한-일 관계가 막힌 원인은 체계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데, 뾰족한 해법은 찾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권혁철 논설위원
nu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