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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부부 건축가의 공공탐색] 도시의 주름을 만나다

등록 2021-07-26 04:59수정 2021-07-26 07:45

서울시 종로구 경운동 천도교 대교당과 수운회관. 임형남 그림
서울시 종로구 경운동 천도교 대교당과 수운회관. 임형남 그림

부부 건축가의

공공탐색

서울 지하철 3호선 안국역에서 지상으로 올라가면 가회동과 종로3가로 향하는 길이 맞닿은 네거리가 있다. 나는 그중 남쪽 길을 선호한다. 그 길은 예전에 허리우드극장으로 가거나, 실험극장으로 연극을 보러 가거나, 낙원상가에 악기 구경하러 다니던 길이기도 하다. 그런저런 추억 말고도 갑자기 달의 뒷면으로 들어선 것처럼 고요해지고 적막해지는 동네의 분위기가 좋아 요즘도 인사동이나 종로 쪽으로 나갈 때 일부러 돌아서 가곤 한다.

그 길의 물리적인 거리는 짧지만, 심리적인 거리가 무척 길다. 비슷한 경험이 있는데, 광화문 교보문고 뒷문에 접해 있던 피맛길 구간은 기껏해야 50m 남짓한 길이였다. 가는 도중 생선 굽는 냄새도 맡고 중간에 빠지는 작은 골목도 만나며 한참을 걸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그 길이 뭉개지고 커다란 건물로 치환되자, 심리적인 거리는 훨씬 짧아져 단숨에 지나간다. 시간의 주름이 없어진 것이다.

도시는 주름이다. 그런 주름이 편편하게 펴진 도시는 내용이 없고 이야기가 사라진 세트가 된다. 호젓한 그 길, 경운동에는 어떤 주름이 남아 있을까.

그곳에는 민족 종교인 천도교 총본산이 있는데, 제일 먼저 수운회관이 보인다. 수운은 동학을 창시한 최제우의 호이다. 그 안쪽으로 고색창연한 천도교 중앙대교당이 있다. 마당에는 수령이 오래된 은행나무가 있고 잠시 쉴 수 있는 벤치가 있는데, 그 길을 지날 때 반드시 들르는 곳이다. 그곳에 앉아 있으면 마치 시간과 세상의 번뇌가 멈춘 것처럼 아늑하고 고적하다.

변화가 극심한 서울의 한복판에서 아주 드물게 원래의 속도를 유지하며 잘 살고 있는 장소이다. 마치 자신을 잃지 않고 의연하게 나이 먹은 세상의 원로 같다.

천도교 중앙대교당은 3대 교주 손병희 선생이 모금을 해서 확보한 자금으로 지은 건물이다. 일본인 건축가 나카무라 요시헤이가 설계해서 1921년에 완공됐다. 그런데 건물의 느낌이 무척 묘하다. 일단 일본인이 설계한 서양식 건물이라서인지 다양한 양식이 담겨 있다. 화강석 기초 위 붉은 벽돌로 외부를 감싼 모습은 고딕 양식과 바로크 양식의 영향이 숨어 있다. 마치 갑자기 근대화를 이룬 조선과 일본의 개화기 지도자처럼 근엄하면서도 어딘지 머쓱한 느낌도 든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드물게 보이는 시세션(Secession) 스타일이 있다는 사실이다. 시세션은 20세기 초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서 젊은 건축가들이 과거(양식)와의 분리를 기치로 내세우며 펼친 디자인 운동이다. 과거의 양식을 모방하는 것에서 벗어나 근대적이며 합리적인 건축을 추구하며, 구세대의 케케묵은 것들과 작별하고 새로운 세상으로 가고자 하는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나카무라가 그런 의도를 가지고 설계한 것은 아니겠지만 시세션의 요소를 넣은 것은 마치 동학의 사상과 조직을 계승하여 문명개화와 혁신 운동을 전개한 천도교의 정신과도 맥이 닿는 것 같다.

중앙대교당은 완공 직후 명동성당, 조선총독부와 함께 장안의 3대 명물로 유명했다. 항일운동의 거점이었으며 김구 선생이 해방 후 귀국하여 제일 먼저 찾은 장소였다고 한다. 1945년 9월16일 대한민국 최초의 정당인 한국민주당(한민당)도 여기서 창당했으니 정치사적 의미도 깊은 곳이다.

그리고 50년 후인 1970년 우리나라의 1세대 현대 건축가인 정인국의 설계로 중앙대교당 옆에 수운회관이 지어졌다. 서양의 양식과 과도기적 기법이 섞여 있는 대교당과는 대조적으로 현대건축의 옷을 제대로 입고 있다. 어찌 보면 전혀 맥락이 닿지 않는 별개의 건물 같은 인상을 주지만, 다시 50년의 시간이 더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서로 녹아들고 있다.

공공 공간이란 가로, 공원, 광장 등과 더불어, 도시의 골목, 우물가 같은 고전적인 장소들을 포함해서 여기저기 숨어 있는 다양한 도시의 틈들도 해당된다. 요즘 지자체들은 사회 구성원을 위해 많은 투자를 하고 많은 시간을 들여 공공 공간을 조성한다. 그런데 공급자 위주로 만들다 보니 겉모습은 그럴듯한데 내용이 부실하거나 심지어 내용 자체가 없을 때도 있다.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거창한 퍼포먼스를 벌인다고 해서 좋은 공공 공간이 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공간을 만든다며 손대는 순간 그동안 문제없이 잘 보존되며 점점 완숙해지던 오래된 공간들이 사라지고 있다.

중앙대교당 너른 마당 은행나무 그늘에 앉아 시간의 주름을 만지며, 도시의 공공 공간이란 이렇게 오랜 시간 기억이 쌓이고 손때가 묻으며 숙성되고 완성되는 것임을 되새기게 된다.

노은주·임형남 가온건축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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