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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진순 칼럼] 언론중재법, 누구를 위해 서두르나

등록 2021-08-10 13:34수정 2021-08-23 19:28

시민 피해의 실질적 구제라는 측면에서는 여전히 허들이 높고, 권력층이 이 법안을 악용하지 못하도록 방어하는 측면에서는 허들이 너무 낮다. 효과적인 신약이라면 건강한 세포는 보호하고 병든 세포만 확실히 공격해야 하는데, 그 반대가 되면 약효는 떨어지고 부작용이 높아져서 약으로 쓸 수가 없다.

이진순 | 재단법인 와글 이사장

언론이란 사실 모호한 용어다. 원로언론인 김중배 선생은 언론이라는 말을 쓸 때 따옴표를 붙여 ‘언론’이라 쓰곤 했다. 본래 언론이란, 인간 사이의 소통을 가리키는 포괄적이고 근원적인 개념인데, 통상 ‘언론사’나 ‘언론매체’와 동의어로 쓰이고 있어서 그 탐탁지 않은 관행에 어쩔 수 없이 따른다는 것을 표시하기 위한 인용부호였다.

“‘언론’의 문제를 ‘언론’기관이나 그 종사자의 문제만으로 한정해 버리는 시각은 옳지 못하다. 그들은 일반적인 언론의 원리에 기대어, ‘언론’으로 통칭되는 미디어를 영위하고 있을 뿐이다. 이를테면 ‘언론’들이 주장하는 언론의 자유나 알 권리란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그것은 방송사나 신문사의 언론자유를 위하기에 앞서, 국민의 언론자유를 위한 헌법적 보장이다.”(2001년 1월15일, 김중배 <‘언론’의 제자리를 위하여> 중에서)

‘알 권리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국민이며, 언론인은 (정확한 진실을) ‘알릴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점을 그는 거듭 강조했다. 20년 전에 쓰인 김중배 선생의 글이 새삼스럽게 와닿는 것은, 최근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둘러싼 논쟁 때문이다.

지난달 27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통과된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법안의 취지와 실효성을 두고 여야 간은 물론 시민사회 내부에서도 다양한 이견이 제기되고 있다. ‘언론개혁의 디딤돌’이라고 보는 견해와 ‘위헌적인 언론 재갈 물리기법’이라는 비판이 공존하지만, 이런 양극적 찬반 논쟁으로는 문제의 핵심을 제대로 짚기 힘들다. 언론을 둘러싼 환경은 2차원의 평면이 아니라 3차원의 입체적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 ‘시민-정치권력’의 긴장 관계가 상존할 때 언론은 그중 어느 한쪽에 설 것을 요구받았다. 권력의 충견이 되거나 시민을 위한 투사가 되거나.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언론은 진영화된 정치권력과 갈등하거나 융합하면서, 격화되는 상업적 경쟁의 자기장에 끈끈하게 포획되어 가고 있다. 클릭 수를 높이기 위해 자극적인 제목을 달고, 무분별한 인용 보도, 무책임한 음모론을 퍼뜨리기도 한다.

그래서 이제는 과거의 양자구도가 아니라 ‘언론산업-권력과 자본-시민’의 3각 구도 속에서 언론 문제를 봐야 한다. 여기서 가장 중시해야 할 요소는 당연히 ‘시민’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주장하는 것과 같이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시민을 위한 언론개혁이 되기 위해서는 다음 두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첫째, 언론의 횡포로 인한 시민의 피해구제를 실질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둘째, 권력이 언론을 위축시켜 시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지 못하도록 확실한 방어장치가 필요하다. 지금 민주당이 강행 추진하고 있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이 두가지를 충족하기에 부족한 점이 많다.

이번 개정안은 ‘고의나 중과실에 의한 허위보도’에 대해 손해액의 최고 5배까지 손해배상액을 정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고의나 중과실에 의한 허위보도인지 입증해 내는 것은 여전히 일반 시민에겐 어려운 일이다. 일반 시민이 피해자인 경우에는 언론사로 하여금 고의 중과실에 의한 허위보도가 아니라는 점을 입증할 책임을 지게 하고, 권력과 자본의 경우에는 원고 측인 그들 스스로 입증 책임을 지도록 명확히 규정해야 강자의 전략적 봉쇄소송과 선량한 시민의 피해를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고위공직자나 대기업 등 힘 있는 권력자가 자신들에게 비판적인 기사마다 소송을 남발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제한조건도 강화해야 한다. 민주당은 현재의 개정안에 ‘악의를 가지고 허위 조작보도를 한 경우에 한하여’라는 문구를 넣어서 권력자의 악용 가능성을 줄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악의성’을 규정하는 조항들이 너무 광범위하고 모호하다. ‘허위 조작보도로 인하여 손해가 발생할 것을 인식한 경우’나 ‘허위 조작정보로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입은 경우’ 등이 ‘악의성’에 해당하는데 이런 식이라면 악의성에 해당하지 않을 비판적 보도는 없다. 민주당은 권력자의 소송 제기에 대해 2중 3중의 제약장치를 두었다고 하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2중 3중의 동어반복에 불과하다.

시민 피해의 실질적 구제라는 측면에서는 여전히 허들이 높고, 권력층이 이 법안을 악용하지 못하도록 방어하는 측면에서는 허들이 너무 낮다. 효과적인 신약이라면 건강한 세포는 보호하고 병든 세포만 확실히 공격해야 하는데, 그 반대가 되면 약효는 떨어지고 부작용이 높아져서 약으로 쓸 수가 없다. 정쟁에 몰입해 졸속입법이 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의 몫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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