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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특파원 칼럼] 백신 쌓아두고 코로나 앓는 미국

등록 2021-08-13 04:59수정 2021-08-19 11:45

황준범 워싱턴 특파원

일주일 남짓 뒤 시작할 가을 학기를 앞두고, 내가 사는 미국 워싱턴 인근 버지니아주 페어팩스카운티 교육청은 모든 학생과 교사들이 실내에서 의무적으로 마스크를 착용할 것이라고 안내해왔다. 접종 자격이 되는 대로 코로나19 백신을 맞을 것을 권하면서, 일부 학교들에 백신 클리닉을 차리겠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아이들이 하루 종일 마스크를 쓰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안타깝지만, 1년 이상 지속된 재택 온라인 수업을 끝내면서 안전한 대면수업으로 복귀하기 위해서는 마땅히 필요한 조처다.

그런데 이게 미국의 다른 지역에서는 논란이 된다. 공화당 소속인 플로리다, 텍사스 등의 주지사들은 마스크 의무화를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이에 주 내의 교육구들은 반발하며 마스크 착용을 자체적으로 의무화하고, 다시 여기에 반대해 일부 교사가 소송을 내는 등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백신 접종도 끊이지 않는 논쟁거리다. 미국은 ‘백신 이기주의’라는 국제적 비난을 들어가면서도 백신을 쌓아두고 각종 유인책을 동원해 접종을 독려하고 있다. 수도 워싱턴은 새 학기를 맞아 백신 맞는 학생들에게 에어팟과 아이패드를 경품으로 내걸었다. 그런데도 미국의 전체 인구 대비 완전접종 비율은 50%다. 백신 부족에 시달리며 완전접종 비율 15.7%(11일 0시 질병관리청 기준)에 머물고 있는 한국과 비교하면 가슴 칠 일이다.

일부 미국인들의 백신 거부 정서는 강고하다. 지난달 중순 <에이피>(AP) 통신 여론조사에서, 백신을 맞지 않은 이들의 80%는 앞으로도 맞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미국에서 코로나19 신규 확진자와 사망자가 최근 2주 사이 두배로 뛰고, 사망자의 99%는 백신 미접종자들이라는 사실은 이들에게 잘 통하지 않는다. 백신의 안전성·효과에 대한 의심, 정부와 보건전문가에 대한 불신, 정확한 정보 접근성 부족 등이 그 이유다. 가장 큰 이유는 백신이나 마스크 선택은 개인의 자유이니 국가나 제3자가 개입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지만 마스크나 백신은 자신뿐 아니라 타인에 대한 배려와 보호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방역조처에 동참해 함께 면역력을 끌어올려야 공동체가 유지된다. 그러나 미국의 마스크·백신 거부자들은 개인의 자유와 공공선 사이에서 전자만을 강조한다. 일각에서는 이들에게 분노를 표하면서 “정부가 마스크·백신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연방정부가 모든 국민에게 이를 의무화할 권한이 있는지는 불분명하고, 조 바이든 정부 또한 국민들에게 촉구만 하면서 의무화 결정은 주 정부에 맡기고 있다. 캘리포니아 등 일부 주 정부들도 공무원이나 학교, 의료시설 종사자들에게만 백신 접종을 요구한다.

국가가 법적으로 강제하지 않더라도 자신과 공동체를 생각해 백신 접종과 마스크 착용에 협력하는 것은 한국에서라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개인의 자유를 독립선언서와 헌법에 새겨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미국에서는 다르다. 더구나 미국에서 코로나19와 방역조처에 대한 인식은 지난해 사태 초기부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정점에 둔 채 양극단으로 정치화해버렸다. 어른들의 정치적 공방에 개학을 앞둔 아이들의 건강이 담보로 잡혔다.

<정의란 무엇인가>로 유명한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는 지난해 교내지 인터뷰에서, 분열된 정치와 무능한 리더십, 약화된 사회적 유대를 언급하면서 “우리가 준비되지 않은 때에 팬데믹이 왔다”고 말했다. 불평등이 심화하고 지배 엘리트에 대한 반감이 깊어진 때라 코로나19에 연대 대처가 어렵다는 얘기다. 백신과 자본만으로 코로나19를 쉽게 뛰어넘을 수 없다는 점을 미국이 보여주고 있다. jay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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