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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성한용 칼럼] 윤석열·윤희숙, 보수 세력의 희생양

등록 2021-08-30 14:27수정 2021-08-31 02:38

석과불식(碩果不食)이라는 말이 있다. 대한민국의 이른바 보수 세력은 언제부턴가 쓸모 있어 보이는 사람들을 몽땅 정치판에 끌어들여 허겁지겁 소비해 버리는 어리석음을 반복하고 있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부친의 ‘부동산 투기 의혹’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부친의 ‘부동산 투기 의혹’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성한용 선임기자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자다. 지역구 주민이 아니라 국민을 대표한다. 국회의원 사직을 국회 의결로 허가하도록 한 이유다.

그래도 윤희숙 의원이 제출한 사직서는 의결하는 것이 옳다. 국회의원 그만두겠다는 사람을 붙잡아놓고 정쟁의 도구로 삼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부친의 부동산 투기 혐의와 윤희숙 의원 개입 여부는 수사기관이 밝혀내서 처벌하면 될 일이다.

윤희숙 의원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나는 임차인입니다”로 시작하는 5분 발언을 한 것은 2020년 7월 30일이었다. 발언 직전 본회의에서 의결한 임대차법 개정안의 문제점을 차분하고 논리적으로 비판했다.

꽤 설득력 있는 내용이었다. 국회의원이 된 뒤 첫 본회의장 발언이라서 그랬는지 긴장을 감추지 못했다. 팔을 심하게 떨었다.

윤희숙 의원의 5분 발언은 유튜브에 올라 인기를 끌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전율이 느껴진다”, “우리나라 최고의 경제학자가 국회의원이 된 뒤 첫 본회의 발언을 한 것”이라고 찬사를 쏟아냈다. “이런 분이 국토부 장관 하면 부동산 벌써 잡았다”, “당장 서울시장으로 내보내야 한다”고 추켜세웠다.

보수 성향 신문은 ‘레전드 영상’, ‘윤희숙 신드롬’이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5분 연설 한방에 하루아침에 보수 세력의 영웅으로 떠오른 것이다.

윤희숙 의원은 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컬럼비아대 경제학 박사를 거쳐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을 한 경제학자다. 아무리 그래도 그를 ‘우리나라 최고의 경제학자’라고 한 것은 과장이 너무 심했다.

아무튼 윤희숙 의원은 이 사건으로 여야 대치 최전선에서 정부 여당을 공격하는 전사가 됐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여당 대선 주자 선두로 나서자 그의 기본소득을 집중적으로 비판하는 것도 윤희숙 의원 몫이었다.

윤희숙 의원의 공격 대상은 경제 분야에 국한되지 않았다. 정부 여당의 국정과 정책을 모조리 저격했다. 비판은 갈수록 날카롭고 강해졌다.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던가. 윤희숙 의원은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너무 많이 나간다고 생각했다.

결국 사달이 났다. 같이 살지도 않는 부친의 부동산 투기 의혹 때문에 윤희숙 의원이 국회의원 사직서를 냈다. 그는 “정권교체의 명분을 희화화할 빌미를 제공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했다. 최전선의 병사는 어차피 전사가 운명인지도 모른다. 윤희숙 의원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

비겁한 것은 이른바 보수 세력이다. 명예를 지키기 위해 의원직을 던진 윤희숙 의원을 이번에는 “염치와 상식으로 책임 있는 정치인의 모습을 보였다”며 또 호들갑을 떨었다.

윤희숙 의원의 등을 떠밀어 최전선으로 내몰아놓고 이번에는 그의 정치적 죽음을 영웅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뼈까지 우려먹으려는 셈이다.

사실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대선 출마도 그랬다. 두 사람 모두 처음부터 대선 출마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보수 세력에는 그동안 그럴듯한 대선 주자가 없었다. 반문재인 깃발을 세워줄 기수도 없었다. 다급한 보수 세력은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 문재인 정부의 감사원장이었던 두 사람의 허파에 ‘차기 대통령’이라는 바람을 불어 넣었다. 작전은 성공했다.

잘 될까? 잘 안 될 것 같다. 자격도 없으면서 부름에 응한 사람들은 한심하다. 그러나 불러낸 사람들은 사악하다. 정치 문외한들을 대선 주자로 띄워서 잠시 써먹고 버리겠다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모름지기 착하게 살아야 한다.

석과불식(碩果不食)이라는 말이 있다. 과실나무에 달린 가장 큰 과일을 따 먹지 않고 두어 다시 종자로 쓴다는 의미다.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새겨야 할 금언이다.

대한민국의 이른바 보수 세력은 언제부턴가 쓸모 있어 보이는 사람들을 몽땅 정치판에 끌어들여 허겁지겁 소비해 버리는 어리석음을 반복하고 있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보수 세력 안에 대안이 없는 것도 아니다. 국민의힘에는 개혁 보수 성향의 좋은 정치인들이 많이 있다. 숙성 과정을 거쳐 대선 주자로 키워나가면 된다.

박근혜 대통령의 가장 큰 잘못은 국정농단이 아니다. 배신자 낙인을 찍어 유승민 의원을 내쫓은 것이다. 보수의 미래를 잘라냈기 때문이다. 어쩌면 보수 세력 전체가 지금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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