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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부동산 개평’을 주겠다는 공약이 무섭다 / 정남구

등록 2021-08-31 18:24수정 2021-09-01 09:18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전망대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주변 아파트 단지의 모습. 연합뉴스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전망대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주변 아파트 단지의 모습. 연합뉴스

정남구 논설위원
2012년 대통령 선거를 두달 앞두고 10월에 ‘부동산 투기는 죄가 아니다’라는 제목의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집값 하락으로 ‘하우스푸어’가 생겨나 있을 때다. 당시 박근혜 후보가 주택담보대출 상환이 어려운 집주인의 주택 지분을 공공기관이 사주자고 한 것을 비판하는 글이었다. 범죄가 아니라서 정부가 투기 행위를 막지 않았듯이, 실패한 투기를 구제해서도 안 된다는 글이었다. 그런데 제목이 과격했던지, 전국철거민협의회가 연말에 ‘올해의 투기 조장꾼 10명’에 내 이름을 5위로 올렸다.

10년이 흘렀다. 부동산 문제는 40년 묵은 뿌리가 50년 묵으며 더 굵어졌다. 부동산 정책은 더 많아졌지만, 현실은 ‘집이나 땅을 사는 사람이 결국 승자가 된다’는 부동산 불패 신화를 더욱 굳게 했다. 그리고 안정책이 실패로 돌아갈 때면 정치인들은 ‘투기꾼’을 그 원흉으로 거듭 불러낸다. 이번에는 여야가 소속 국회의원과 가족의 부동산 전수조사를 국민권익위원회에 의뢰까지 했고, 그 결과를 놓고 정치권이 한바탕 요란했다.

위장 전입, 불법 농지 매입 등은 불법행위다. 처벌해야 한다. 그러나 단지 매매 차익을 노려 위험을 감수하고 부동산을 사는 ‘투기 행위’에서 원인을 찾거나, 공직자의 도덕적 솔선수범을 요구하는 방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나는 본다. 진정으로 국민의 주거 불안을 해결하고 싶다면, 투기가 싹트고 번성하는 온상을 제거하는 게 중요하다.

우리는 부동산 불패 신화를 깨뜨릴 답을 알고 있다. 필요 이상 보유한 부동산에 세금을 무겁게 매기고, 차익을 적절히 환수하며, 투기수요를 억제할 수 있게 정부가 공공주택을 적극적으로 공급하는 것이다. 이런 정책을 일관되게 시행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투기꾼에게 온갖 화살을 돌리던 여야가 최근 합의해 종합부동산세를 대폭 깎아준 것은 위선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여야 대선 후보들은 어떤 부동산 공약을 내놓고 있는가?

이재명 경기지사는 ‘기본주택’을 공약했다. 고품질의 장기임대주택 100만호를 지어, 건설원가에 관리비를 더한 수준의 임대료로, 누구나 입주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로또 아파트’ 분양 정책에서 벗어나 좋은 임대주택 대량 공급으로의 전환은 획기적이다. 재정을 효율적으로 써서 장기 지속할 수 있느냐에 성패가 달렸다고 본다. ‘로또 아파트’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실망스러울 것이다.

이낙연 전 총리는 법인의 택지 소유를 제한하고 개인에게는 상한선을 두는 택지소유상한법, 환수율을 20%에서 50%로 올리는 개발이익환수법, 방치하거나 적극 사용하지 않는 토지에 가산세를 매기는 종합부동산세법 제정·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투기 심리’의 싹을 자르겠다는 것이다.

여당 후보들은 집값을 안정시키지 못했다는 무주택자들의 질책에 대답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청년·신혼부부에게 토지임대부 주택을 민간 분양가의 반값으로 공급하는 ‘반값 주택 ’을 내놓았다. 국공유지와 재개발·재건축 사업에 용적률을 높여주고 , 기부채납받은 주택을 청년·신혼부부에게 싸게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이른바 ‘반값 아파트’ 창시자인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은 서울 강북 지역의 대규모 재개발을 통해 시세의 4분의 1 수준인 ‘쿼터 아파트’를 공급하겠다고 했다. 값을 낮추는 방식은 최 전 원장의 구상과 비슷하다. 개발이익을 늘려주고 개평을 받아다 주는 듯한 모양새가 찜찜하다. 원희룡 전 제주지사는 9억원 이하의 주택을 생애 첫 주택으로 사면 정부가 집값의 50%를 공동 투자하는 ‘반반 주택 ’을 내놨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주택 공급을 획기적으로 늘리겠다면서, 대출 규제 완화와 세금 인하를 공약했다. 또 무주택 청년 가구에 3기 신도시 등에서 공공택지의 국민주택(85㎡) 규모 이하 주택을 시세보다 싼 원가로 분양하고, 5년 이상 거주한 뒤 국가에 매각하면 차익의 70%까지 가져가게 하는 이른바 ‘원가 주택’을 30만호 공급하겠다고 했다. 사실상 나라에서 당첨금을 주는 ‘청년 로또 아파트’다.

야당 후보들은 ‘당신에게도 시세차익을 얻을 기회를 주겠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런데, 그게 가능하려면 집값이 계속 올라야 한다. 그래서 나는 무섭다.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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