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8년 9월1일 서울 북촌의 양반집 부인들이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인권선언문인 ‘여권 통문’이다. 여성에게도 교육을 받을 권리, 직업을 가질 권리, 정치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부가 매년 9월1~7일을 ‘양성평등 주간’으로 정해 다양한 행사를 벌이는 까닭이다.
여성가족부는 양성평등 주간 중 하루를 ‘양성평등 임금의 날’로 정해 성별 임금 통계를 공개한다. 지난해 개정된 ‘양성평등 기본법’에 따른 것이다. 올해 처음 공개된 상장기업의 성별 임금 격차는 35.9%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 노동자 임금이 남성 노동자보다 35.9% 적다는 얘기다. 123년 전 ‘여권 통문’을 통해 ‘남녀 동등권’을 역설했던 여성들이 지하에서 통곡할 일이다.
한국의 성별 임금 격차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부동의 1위다. 2019년 기준 한국의 성별 임금 격차는 32.5%로 오이시디 평균(12.8%)의 2.5배다. 2위인 일본(23.5%)과도 큰 차이가 난다. 성별 임금 격차는 한 나라의 성평등 수준을 파악하는 데 핵심적인 지표다. 임금은 채용, 승진, 근속 기간, 고용 형태 등 다양한 요소들이 투영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선진국들은 성별 임금 격차를 줄이기 위해 정책적 노력을 기울여 왔다. ‘성평등 임금 공시제’가 한 예다. 영국의 경우, ‘평등법’에 따라 2018년부터 고용 규모 250인 이상 민간기업의 성별 임금 격차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시급과 상여금의 평균과 중간값의 성별 격차, 상여금을 받은 노동자의 성별 비율 등이 필수 공개 대상 정보다.(구미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 ‘해외의 성별 임금 격차 시정 사례 연구’)
임금 정보의 투명한 공개는 임금 불평등 해소를 위한 첫걸음이다. 격차의 실태를 파악해야 원인을 분석하고 개선책을 마련할 수 있다. 여가부도 올해부터 상장기업의 성별 임금 통계를 공개하기 시작했지만, 공개 항목이 연간 급여 총액과 1인 평균 급여액뿐이어서 한계가 있다. 직급, 직무, 직종, 고용 형태, 재직 기간 등에 따른 성별 임금 정보를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온전한 ‘성평등 임금 공시제’를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 이종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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