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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정의길 칼럼] 코로나19가 ‘노동자 우위 시장’을 점화했나

등록 2021-10-25 16:16수정 2021-10-26 02:33

코로나19 사태로 격발된 노동력 부족 사태는 패러다임의 전환일 수 있다. 출생률 저하나 인구 감소 등을 경제 성장에 악으로만 보는 것은 저임금을 선호하는 자본가 시각일 뿐이다. 자본과 노동 모두에게 삶의 질을 높이는 기회로 생각해봐야 한다.
지난해 11월 ‘블랙 프라이데이’를 앞두고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에서 일하는 15개 국가 노동자들이 연대 파업과 항의 시위에 나섰다. 사진은 방글라데시에서 열린 시위. 방글라데시 노조 트위터 캡처/연합뉴스
지난해 11월 ‘블랙 프라이데이’를 앞두고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에서 일하는 15개 국가 노동자들이 연대 파업과 항의 시위에 나섰다. 사진은 방글라데시에서 열린 시위. 방글라데시 노조 트위터 캡처/연합뉴스

정의길|선임기자

미국이나 유럽에서 노동자가 부족하다고 아우성이다.

미국의 식당들은 종업원을 구하지 못해 영업시간을 단축한다. 영국에서는 기름을 실어나를 트럭 운전사가 없어서 주유소에는 긴 줄이 섰다. 미국에서 치과의사를 하는 지인은 간호조무사를 구하지 못해서 진료에 차질이 빚어진다고 울상을 했다.

공급망 정체와 노동력 부족은 코로나19 이후 선진국 경제의 대표적 증상이다. 공급망 정체는 그동안 밀린 주문에다가 아직 정상화되지 않은 방역 때문이지만, 노동력 부족은 예기치 못한 현상이다.

미국 노동부가 지난 12일 발표한 ‘월간 신규 일자리 및 노동 이동률’ 통계를 보면, 지난 8월에 1040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된 반면 일자리를 떠난 노동자 수는 430만명으로 급증했다. 430만명의 이직은 관련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00년 12월 이후 최고치이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지난 14일 ‘430만명 노동자가 실종됐다, 그들은 어디로 갔는가?’라는 장문의 탐사 보도를 했다. 현재 미국 노동시장에서는 코로나19 사태 이전에 비해 430만명의 노동자가 사라졌는데, 이는 일을 하고 있거나 일자리를 찾는 16세 이상 인구의 경제참여율이 2020년 2월에 비해 63.3%에 불과하다는 의미라고 전했다. 신문은 코로나19 사태에서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직장을 그만뒀을 뿐만 아니라 늘어나는 취업 기회에도 직장에 복귀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네덜란드의 다국적 금융그룹 ‘아이엔지’(ING)의 경제분석가들은 미국의 고용이 2020년 2월에 비해 500만개 일자리가 적은데, 이는 일자리가 적어서가 아니라 공급이 안 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에는 현재 1000만개의 빈 일자리가 있다는 것이다.

보수적인 경제학자들은 미국 등 선진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제공한 코로나19 지원금과 강화된 실업수당으로 노동자들이 근로 의욕이 저하돼 놀고먹고 있다고 진단한다. 하지만, 미국에서 보조금이나 강화된 실업수당을 조기 종료한 주에서도 노동력 증가 현상은 감지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지난 8월 통계를 보면, 강화된 실업수당 지급을 지속하는 주가 실업수당을 조기 종료한 주에 비해서 취업 증가율이 미세하나마 높았다. 특히 영국과 유럽에서는 보조금과 실업수당을 줄어든 노동시간이나 일시해고 기간에 비례해 제공했다. 보조금 등을 받아서 놀고먹을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미국 등 선진국들의 노동력 부족은 코로나19 사태 이전에 그 뿌리가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잇따른다. 그 이전부터 잠복해 있던 노동에 대한 노동자들의 생각이 코로나19 이후 현실로 격발되고 있다는 것이다. 휴가도 없는 열악한 작업 환경과 저임금의 일자리로 노동자들은 이제 복귀하지 않고 있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조기 은퇴, MZ 세대의 낮은 출생률, 이민 제한에 더해 사무실로 매일 출근하는 기존 직장에 대한 선호도 감소 등이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이런 노동력 부족 사태가 일시적이라기보다는 장기적으로 지속될 것으로 아이엔지 경제분석가들은 지적한다.

최근 할리우드 노동자들의 파업이나 아마존 등 다른 대기업 파업에서 노동자들은 단순히 임금 인상이 아니라 삶의 질을 요구해 관철하고 있다. 레저와 접객 분야에서는 코로나19에 이전에 비해 고용이 9%나 줄어든 반면 임금은 18%가 올랐다.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이를 휴가도 없는 열악한 작업 환경과 저임의 일자리에 대한 ‘미국 노동자의 봉기’라고 규정했다. 크루그먼이나 데이비드 오터 매사추세츠공과대(MIT) 경제학 교수는 ‘노동력 부족은 좋은 일’이라고 환영한다.

미국 경제가 지난 40년 동안 일자리가 양극화되면서, 다수의 노동자는 열악한 저임금의 일자리에 내몰렸다. 이는 미국의 소득 하위 20% 가구의 구성원 1명에게 여러 형태로 9500달러 상당의 국가 보조를 지급하게 했다고 오터 교수는 지적한다. 이 돈을 임금 형태로 지급하는 것이 노동자나 국가 전체로 보아서 훨씬 건전한 것은 자명하다.

노동경제학자나 노조에서는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때 파업한 항공관제사들을 대량 해고한 이후 위축된 노조 운동이 부활하고, 노사관계에서 노동자 우위로 가는 전환점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선진국에서의 노동력 부족 사태는 노동시장과 사회의 패러다임의 전환일 수 있다. 출생률 저하나 인구 감소 등을 경제 성장에 악으로만 보는 것은 저임금을 선호하는 자본가 시각일 뿐이다. 자본과 노동 모두에 삶의 질을 높이는 기회로 생각해봐야 한다.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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