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20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이른바 ‘정치인 테마주’로 떠오른 주식 가격이 큰 폭으로 오르내리고 있다. 사진은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연합인포맥스 모니터 모습. 연합뉴스
정남구 논설위원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20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한 1일, 안 대표가 창업하고 18.6%의 지분을 가진 상장사 안랩의 주가가 13.5%나 급락(종가 7만1300원)했다. 안랩의 주가는 안 대표의 정치적 부침에 따라, 과거에도 큰 폭으로 출렁거린 바 있다. 그가 2012년 대통령선거에 도전했을 때는 2만원 언저리에 있던 주가가 2011년 8월부터 올라 석달 만에 16만7200원까지 폭등했다. 두번째 대선 도전을 앞두고 있던 2017년 초에는 6만원대에서 14만9천원까지 올랐다. 이런 주가 변동은 이른바 ‘펀더멘털’과는 별 관계가 없었다. 안랩의 영업이익은 2015년 122억원에서 2020년 198억원으로 완만한 성장세를 이어왔다. 그렇게 실적이 안정적인 회사를 더 찾아내기도 힘들 것이다. 안 대표의 정치적 부침은 안랩의 실적에 전혀 영향을 끼친 것 같지 않다.
그런데 안철수 대표의 정치적 부침에 영향을 받은 주식이 안랩만은 아니다. 1일 안랩처럼 10% 안팎 급락한 주식들로 다믈멀티미디어, 써니전자, 까뮤이앤씨 등이 있다. 이들 기업은 안 대표와 업무상 관련이 없음에도 정치인 안철수 관련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주가가 출렁거렸다.
‘정치인 테마주’의 움직임은 그야말로 가관이다. 6월11일 국민의힘 대표 선거를 앞두고, 삼보산업은 5월17일 1550원에서 6월4일 장중 3750원까지 올랐다. 넥스트아이는 5월21일 1500원에서 6월4일 장중 3025원까지 올랐다. 당대표 당선 가능성이 높은 이준석 후보의 부친이 과거 삼보산업 자회사 법정관리를 맡았고, 넥스트아이의 감사위원을 맡았다는 소문이 주가를 끌어올렸다.
4월7일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는 박영선, 오세훈, 나경원 테마주가 움직였다. 그렇지만 올해는 역시 내년 3월 대통령선거에 나서는 정치인 테마주가 화제의 중심에 있다. 이낙연, 이재명, 윤석열, 홍준표 등의 이름이 많이 거론됐는데, 주가를 움직인 소문의 내용은 결코 진지하게 생각할 만한 것이 아니다. 대표나 이사가 후보와 대학 동문이다, 같은 성씨다, 과거에 같은 직장에서 일한 적이 있다 따위였다. 잘못 알려진 소문 탓에 주가가 급등락을 하기도 했다. 1일에는 한 제과업체 주가가 큰 폭으로 올랐는데, 회장이 야당의 유력 대선 후보와 같은 성씨에다, 제조 공장이 있는 곳이 후보 부친의 고향이라는 점이 부각됐다. 이날 나온 여론조사에서 후보의 지지율이 높게 나오자, 주가가 뛰었다고 한다.
정치인 테마주는 정치 이벤트가 끝나면 언제 그랬냐 싶게 주가가 제자리로 돌아간다. 이걸 두고 우리나라 주식 투자자들이 어설프다고 봐서는 안 된다. 투자자들이 그걸 모르는 게 아닌 까닭이다. 투자자들은 그저 큰 변동성을 수익의 기회로 삼는 것뿐이지, 정치의 결과에 따라 기업의 펀더멘털이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테마주’라는 말은 일본에서도 쓰인다. 그러나 어떤 테마가 주가를 움직이는 강도는 한국 증시에 비할 바가 아니다. 특히 ‘정치인 테마주’ 현상은 일본 증시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는 한국의 정치문화에 대한 투자자들의 인식을 반영한 것일 게다. 대통령이나 서울시장 같은 직책은 엄청난 권한을 갖고 있으며, 이런 유력자와 혈연·학연·지연이 기업 경영에서 큰 구실을 한다는 생각이 잠재의식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까닭에, 정치인 테마주 현상이 일어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정치인 테마주가 무조건 나쁜 건 아니다. 정치인의 ‘정책 공약’이 어떤 산업을 성장시키고, 관련 기업의 펀더멘털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정말 아쉬운 것은 테마주를 만들고 움직이는 소문들의 찌질함이다. ‘메타버스 시대’에 ‘본관’이라니.
20대 대통령선거일까지 이제 4개월 남짓 남았다. 그런데 이번 선거를 앞두고는 진지하게 곱씹어보고 싶은 정책 공약을 찾기가 참으로 어렵다. 불공정과 차별, 빈곤과 격차, 청년 실업, 부동산과 주거 문제는 우리의 오랜 숙제이고, 코로나 대유행은 자영업의 붕괴와 이른바 ‘코로나 불평등’을 새로운 숙제로 던져놓았다. 정치가 아니라면 무엇이 이런 문제를 풀겠는가. 진정으로 이런 문제를 대면하여 문제를 풀려고 애쓰는 정치인을 보고 싶다. 정치인들이 테마주가 아니라, 본인의 정책 주가를 끌어올려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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