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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 거는 한겨레] 설레는 한겨레가 되기 위해

등록 2021-12-19 20:42수정 2021-12-20 17:23

정환봉 | 소통데스크 겸 불평등데스크

지난 토요일, 제가 사는 경기도에는 올겨울 제대로 된 눈이 처음으로 내렸습니다. 기온도 부쩍 낮아져 코트로 추위를 견디기 어려워졌습니다. 온통 하얀 창밖 풍경과 별 고민 없이 패딩을 꺼내는 스스로를 보며 겨울이 왔다는 걸 뒤늦게 실감합니다. 딱히 겨울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계절이 바뀌는 것은 아직 설렙니다. 제철에만 즐길 수 있는 것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따뜻한 홍합 국물은 겨울이 아니면 제맛이 아니고, 새콤달콤한 감귤을 까 먹는 일도 이 계절이 아니면 누리기 어려운 호사입니다.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을 한 것도 아니고 오매불망 기다린 것도 아니지만, 때마다 어김없이 찾아와 잊었던 풍경과 기억을 되살려주는 사계절은 저에겐 불청객보다 반가운 손님에 가깝습니다.

그러고 보면 설레는 마음은 새로운 것에 대한 감정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히려 이번 겨울 역시 여느 겨울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에 뿌리를 둔 기대가 마음을 들뜨게 하는 것이겠죠. 겨울은 겨울다울 것이라는 믿음 말입니다.

그렇다면 독자분들에게 <한겨레>는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계절마다 장단점은 있겠지만 그래도 겨울은 여전히 겨울이라서 좋은 것처럼, <한겨레> 역시 <한겨레>라서 좋아해주신다면 좋겠다는 바람이 큽니다. 추운 겨울, 속을 덥히는 홍합탕과 입맛을 돌게 하는 감귤처럼 말이죠. 바람이 큰 이유는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한겨레>는 한때 언론 신뢰도 조사에서 1위를 놓치는 경우가 드물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합니다. 언론에 대한 신뢰도가 전체적으로 떨어진 환경이 위안이 되지는 않습니다. <한겨레>가 오랫동안 큰 신뢰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군부독재 시절 기성 언론에 대한 불신에 바탕을 둔 측면도 컸기 때문입니다.

올해로 창간 33돌을 맞이한 <한겨레>에는 여러 독자가 있습니다. 1988년 창간 당시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마음으로 <한겨레>에 힘을 보탠 독자들도 있고, 젠더와 환경 등 새로운 의제에 비교적 일찍 주목한 언론이었기에 기대를 건 독자들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마다 <한겨레>에 기대하는 바가 다르기도 합니다. 대선을 앞둔 요즘처럼 여야가 첨예하게 맞서는 때에는 같은 날 신문을 두고 여당 편만 드는 것 아니냐는 타박을 듣기도 하고, 야당만 돋보이게 쓴다는 지적을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독자들이 다양해서 방향을 잡기 어렵다는 말은 결국 변명일 수밖에 없습니다. 눈이 오면 길이 질 수밖에 없지만, 겨울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해하고 걷습니다. 그러니 독자들의 불신 원인은 마음에 들지 않는 기사라도 <한겨레>라 한번 읽어보거나 믿어보겠다는 신뢰를 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효용보다 불편함이 더 도드라지고 있는 것이죠. 어쩌면 빠르게 바뀌고 있는 세상에서, <한겨레>의 자리가 어디인지 아직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고민도 듭니다.

독자들이 보시기엔 부족한 점이 있겠지만, 이미 노력하고 있는 것들도 있습니다. 최근 여야 모두에서 몇차례 이슈가 되었던 정치권 인사의 사생활 문제에 대한 접근은 최대한 신중하게 하려 하고 있습니다. 어떤 정치인의 개인사를 보도하는 것에 공익성이 있는지 없는지 단칼에 판단할 수 있는 방법은 없어 보입니다. 다만 신중하게 고민한다면 더 나은 보도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위를 확인할 수 없는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발 기사는 안 쓰려고 합니다. 관심을 끄는 선정적인 기사를 쓰는 것보다 사실 확인이 우선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2차 피해가 예상되는 기사는 선별해 네이버 기사 댓글창을 닫는 등의 조처도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않는 것은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할 것도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독자들의 말씀에 더 귀 기울이면서 많은 고민을 하겠습니다. 늘 우리 곁에 머물며 때마다 누릴 것을 주는 계절처럼, <한겨레>가 있어 다행이라는 이야기를 다시 한번 듣고 싶습니다. 올해도 감사했습니다.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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