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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부부 건축가의 공공탐색] 절대자와 만나는 두개의 탑

등록 2021-12-19 20:43수정 2021-12-20 02:31

경기 화성시 남양성모성지. 임형남 그림
경기 화성시 남양성모성지. 임형남 그림

노은주·임형남 | 가온건축 공동대표

경기도 화성에 있는 남양성모성지는 병인년(1866년)에 박해를 받고 처형된 천주교 신자들의 순교지이다.

우리나라에는 순교성지가 여러 군데 있다. 서울만 해도 한강변 양화진 근처 절두산 순교성지, 용산 근처 새남터 순교성지, 염천교 근처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성지 등이 있다. 그 외에도 안성 미리내성지, 서산 해미성지 등 고난의 역사가 여기저기 점점이 박혀 있다. 그런 희생이 밀알이 되어 한국 천주교의 역사가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남양성모성지는 무명 순교자들을 현양하는 성지이다 보니 조금 늦게 성역화가 진행되었다고 한다. 1983년부터 성역화가 시작되었는데, 1989년부터는 그해에 부임한 이상각 신부가 이 일을 맡게 되었다. 그리고 1991년에는 한국의 첫 성모성지로 선포되었으며, 2011년에는 남양 성모마리아 대성당을 건립하기로 하고 스위스 건축가 마리오 보타에게 설계를 의뢰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햇수로 10년이 되는 2020년에 본당 건축이 마무리되었다.

마리오 보타는 아직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78살의 현역 건축가이다. 그의 작업은 스위스뿐 아니라 전세계에 무수히 많이 지어졌는데 줄무늬를 섞은 벽돌과 기하학적 형태를 능숙하게 다루는 방식이 그의 작업의 시그니처라 할 수 있다. 국내에서도 붉은 벽돌을 고층으로 올린 형태가 인상적인 교보문고 강남사옥과 이태원 리움미술관에 있는 원형 건물 등이 우리에게 익숙하다. 또한 그는 종교건축물도 많이 작업했는데 독특한 조형과 감성으로 이루어진 성스러운 공간이 인상적이다. 특히 그는 그동안 작업한 많은 건물 중에 태작이 거의 없는 무척 성실한 건축가이기도 하다.

​화성 시내에서 조금 나와 외곽으로 빠지는 길로 들어서 약간 건조한 길을 가다 보면 멀리 숲이 울창하고 높지 않은 동산이 보인다. 그리고 그 안으로 조금 들어서면 붉은 벽돌로 높이 세운 두개의 탑이 금세 눈에 들어온다. 쫑긋 솟은 두 탑은 무척 강력하게 사람을 끌어들이는데, 그곳으로 다다르는 길은 유서 깊은 산사에 들어가는 길처럼 호젓하고 명상적이다. 곧게 뻗은 길을 천천히 올라가다 보면 나무가 숲을 이룬 곳을 지나게 되고 이윽고 두 탑이 쿵, 하며 눈앞에 나타난다.

이상각 신부는 이곳을 자연과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걷기도 하고 명상하는 곳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담양의 소쇄원을 염두에 두었다고 하는데 걷다 보면 오랜 시간 이 땅에 들인 정성과 수고로움이 느껴진다.

종교건축의 핵심은 어디론가 ‘들어가는 길’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곳에 다다르면 자신이 왔던 길을 돌아보게 되고 ‘신 앞에 선 단독자’가 되어 절대자와 교감하게 되는 것이다. 남양 성모성당은 그런 종교건축의 기본에 아주 충실하며 많은 은유과 상징을 그 안에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계곡은 크지는 않지만 깊다.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가며 성당은 점점 크게 보이다가 그 앞에 이르면 거대하고 절대적인 존재로 나타난다. ​두개의 탑은 무려 40미터 높이라고 하는데, 성지의 입구에서도 인지될 정도로 상징적인 그 탑은 꼭대기를 대각선으로 잘라 천창을 통해 빛이 쏟아질 수 있도록 했다. 마리오 보타가 국내 언론과 진행한 인터뷰에서도 이야기했듯, 성당은 “거대한 규모임에도 골짜기처럼 움푹 파인 대지에 잘 스며들었다. 계곡의 댐이나 산등성이 사이의 구름다리처럼, 웅장하면서도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룬다.”

한편으로 그는 신자들의 공간은 수평적이기를 바랐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마치 거대한 벽을 만나는 듯했던 외부의 느낌은 내부로 들어가면 완전히 반전이 된다. 타원형 천창으로 빛이 깊게 떨어지고 둥근 천장에서도 빛이 머물러서인지, 무언가 둥그렇고 부드러운 공간에 안온하게 안겨 있는 느낌이 든다. 기존의 성당들이 가지고 있는 절대적인 느낌이나 웅장함과는 사뭇 다르다.

길의 끝에 이르러 만나는 성당, 그리고 그 안에 있는 포근한 내부 공간과 더불어 오랜 시간을 들여 조성한 길도 좋다. 그 길 주변의 다양한 나무와 성지를 상징하는 조각들 사이로 사람들이 스며드는 모습을 보며 현대의 종교건축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성지의 또다른 언덕에는 또다른 스위스 건축가 페터 춤토어가 명상과 치유의 공간으로 티 채플(Tea Chapel)을 제안하고 설계 중이다. 남양성모성지는 종교라는 울타리라기보다는 그저 사람들이 자연을 느끼고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자신과 신을 만나게 하는, 과거의 역사적 의미뿐만 아니라 현재와 앞으로 이루어질 미래를 함께 경험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장소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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